산림기획 숲에 미래가 있다 [2] 문화·자연이 공존하는 캐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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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캐나다 밴쿠버 인근 숲에서 벌목한 목재를 트럭이 옮기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환경친화적인 벌목·조림 인증을 받은 산림이 100만㎢가 넘는다(왼쪽 사진). 2006년까지 치헤일리스 쿼콰춤 산에서 벌목이 진행됐으나 원주민 역사유산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벌목이 중단돼 산 정상에 흔적만 남아 있다(오른쪽).

지난달 13일 캐나다 서부 도시인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110㎞가량 떨어져 있는 치헤일리스. 원주민 1000여 명이 사는 자치구다. 전설 속 설인인 ‘새스콰치’의 활동 무대로도 알려진 곳이다. 자치 사무실 맞은편으로 멀리 우뚝 솟은 산이 보였다. 원주민들이 대대로 신성시하며 영적(靈的) 의식을 행하던 ‘쿼콰춤’이란 산이다. 옛 인디언식 이름이라 정확한 뜻을 아는 이는 없다.

이 산 정상 부근에 이발기계로 밀어버린 듯 숲이 흉측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자치구의 모스 고든 유산담당관은 “산의 소유주인 브리티시컬럼비아(BC) 주정부가 2003년부터 쿼콰춤과 주변에서 벌목 작업을 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에는 정상까지 벌목이 진행됐다. 원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쿼콰춤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입증하는 자료를 내세우며 산의 보존을 요구했다. 그제야 주정부는 원주민과 협의에 나섰다. 원주민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는 결론이 났다. 지난해 6월 주정부는 쿼콰춤을 ‘역사 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벌목은 중단됐다. 벌목을 할 수 있는 구역은 산 주변 지역으로 제한됐다.

고든 담당관은 “원주민과 주정부가 문화를 보존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안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는 세계적인 산림 부국이다. 산림면적이 349만㎢(남한 면적의 35배)로 러시아에 이어 세계 둘째다. 이 가운데 상업화가 가능한 산림만 197만㎢나 된다. 전 세계 신문용지 생산량의 20%, 목재 펄프 생산량의 15%가 캐나다에서 나온다.

이런 천혜의 조건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망가진다. 캐나다는 지속 가능한, 세계 수준의 산림정책을 지탱하는 두 가지 축을 통해 산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쿼콰춤 사례에서 볼 수 있는 ‘합의’ 시스템이 그중 하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이하 UBC)에서 박사과정(산림관리 전공)을 밟고 있는 김인애(31·여)씨는 “캐나다에서는 대화를 통해 보존과 개발을 적절히 조율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캐나다 각 지역산림청에는 유사시 대화를 중재하는 ‘조정관’이 있다.

또 하나의 관리 축은 민간 주도로 시행 중인 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과 캐나다 표준협회(CSA) 인증, 그리고 지속가능산림조성회의(SFI) 인증과 같은 다양한 산림인증 제도다.

1993년 시작된 FSC는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확산됐다. 벌목과 조림이 친환경적으로 이뤄진다는 인증을 받으면 해당 산림에서 생산된 목재에 인증마크를 부착하는 방식이다. 임업기업은 인증마크를 부착해 다른 기업과 차별화하고, 소비자는 인증 원목이나 목제품을 우선적으로 구입함으로써 인증기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FSC는 환경과 사회적 편익, 지속 가능성 등 10개 원칙 56개 기준에 따라 심사한다. 인증서 유효기간은 5년이다. 캐나다는 FSC 인증 산림면적이 29만여㎢로 세계 1위다. CSA와 SFI 인증을 합하면 캐나다 내 산림인증 면적은100만㎢를 넘는다.

BC주 팻 벨 산림자원부장관은 “산림인증 마크가 부착된 제품은 친환경 제품으로 인정받는 것이어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5일 밴쿠버 시내 유기농 전문매장인 ‘케이퍼스’에서 만난 주부 제니퍼는 “인증마크가 붙어 있는 제품은 왠지 신뢰가 더 많이 간다”고 말했다.

밴쿠버=강갑생 기자

◆본 기사 취재는 산림청 녹색자금(녹색사업단)의 지원으로 진행됐습니다. 녹색사업단은 국내 산림환경을 개선하고 해외 산림자원을 개발·조성하기 위해 설립된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입니다.

팻 벨 BC주 산림자원 장관
“개발·보존 조화 이뤄야 지속가능한 임업 가능”

“지속가능한 산림 정책을 위해선 숲에서 얻는 경제적 이익과 환경 보존이라는 두 요소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지난달 15일 밴쿠버 인근 빅토리아섬에 위치한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정부 청사에서 만난 팻 벨(사진) 산림자원부 장관은 조화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주 정부의 산림자원부 장관에 취임했다. 농림부 장관과 광업부 장관도 역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BC 주의 경제·산업에서 임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임산물이 BC주 전체 수출액의 40% 가까이 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최근에는 경기침체에 따른 목재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에는 임업분야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18% 감소했다. 내년에는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

-벌목과 자연 보존은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다. 개발과 보존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임업이란 무엇인가.

“지속가능한 산림정책이란 숲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과 동시에 미래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숲을 보존하는 것이다. BC 주에서는 매년 1% 미만의 산림에서만 벌목이 이뤄진다. 각 지역의 산림관리자가 5년마다 경제적·환경적 요인을 감안해 벌목 허용량을 책정한다. 공공소유 산림에서 벌목을 하는 회사들은 벌목 관련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환경은 또 어떤 방법으로 보호할 것인지를 담은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그 계획에 대한 주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벌목과 개발 과정에서 토착 원주민과의 충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숲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도출하나.

“원주민들의 전통적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산림 관련 작업에 대해서는 원주민들과 긴밀히 협의한다. 산림개발에 따른 이익도 공유한다. 2002년 9월 이후 산림청에서는 167개 원주민 마을과 임업 협약을 체결했다. 산림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수익금을 나눌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빅토리아(캐나다)=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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