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독서, 평생 친구] 학습만화에 빠진 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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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유아·초등생을 위한 학습만화가 늘면서 학부모들 사이에 만화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만화책만 보다 글자가 많은 책을 안 읽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서도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딱히 막기도 어렵다.

‘열려라 공부’에서 자녀의 독서 습관을 진단해 준다는 고지가 나간 후에도 ‘아이가 만화책만 본다’는 신청 사연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아이 손에 만화책 대신 글자가 많은 책(이하 글자책)을 들려줄 수 있을까.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역사 만화 속 화려한 옷·장신구 끌려

박일규군은 역사 만화 속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를 보는 재미에 만화책을 즐겨본다. [김진원 기자]

조문희(39·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씨는 얼마 전 아들 박일규(부천 부안초 3)군에게 책 두 권을 사줬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둘 다 선덕여왕에 대한 만화책이다. “아이가 만화책을 좋아해 사주지만 너무 만화책만 보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에요.” 일규가 좋아하는 만화 장르는 역사. 특히 만화 속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는 일규에게 또 다른 볼거리다. 글자책을 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우리독서논술 이언정 연구원은 일규에게 『삼국지』 중 일부를 읽게 했다. 잠시 후 등장인물의 생김새와 성격을 상상해 보게 했다. “‘후리후리한 키’라고 했으니 덩치가 크고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글을 보면 신중한 성격인 것 같아요.” 이어 같은 내용의 만화책을 봤다. 어느 책이 더 재미있는 것 같으냐고 묻자 일규는 글자책이라고 답했다.

검사 결과 일규는 엄마의 염려와 달리 만화책에 빠진 건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다. 글 이해력이 있고 책의 종류에 따라 읽기 방법이나 전략도 다르게 할 줄 아는 아이였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내용에서 유추할 줄도 알았다. 아직 글자책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라는 게 분석 결과다. 엄마가 조금 더 신경 쓰면 글자책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림책과 글자책 함께 읽도록

자녀가 만화만 읽는 습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모해규 교수는 “책에 흥미가 없거나 독서 경험이 부족한 아이에게 만화는 독서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학습만화는 ‘학습’ 이전에 ‘만화’로 받아 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식과 교양·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대개 7세 무렵 학습만화를 시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은 경우가 천자문을 만화로 구성한 책이라고. 그는 “삼국지나 신화, 과학 만화는 엄마들이 큰 고민 없이 사주곤 한다”며 “남들도 보니까, 학습에 도움이 되겠지 싶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이 만화 중독으로 가는 출발일 수 있다.

모 교수는 만화를 어디까지나 독서 습관을 기르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습만화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과 흥미를 갖게 하되 깊이 있는 독서에 들어가면 만화의 비중을 서서히 줄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 교수는 “학습만화 떼기는 4학년 정도에 마무리 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초등 1~2학년은 만화책 대 글자책 비율을 50대 50, 3~4학년 20대 80, 그 이상이면 100% 글자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학습만화를 읽었다면 같은 주제의 다른 글자책을 병행해 읽게 한다. 예컨대 『마법천자문』을 읽었으면 『어린이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에 도전해 본다. 만화책 한 권을 사줬다면 글자책도 한 권 사주며 읽기를 유도한다.

만화 속 상황 묘사 문장으로 만들어

이 연구원은 “만화 한 권의 어휘는 300개지만 글자책은 10배나 많은 3000개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만화책만 보던 아이가 글자책으로 넘어갈 때는 학년별 추천도서에 연연하지 않는 게 좋다. 독서 능력을 확인해 부족하다 싶으면 그림 동화를 읽게 한다. 삽화가 많고 글씨가 큰 책부터 시작해 점차 글의 양이 많은 책을 고른다.

만화책만 읽어 부족해진 어휘력은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만화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그림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책을 읽은 후 그림 활동을 권했다. 예컨대 만화책 내용을 글로 구성해 본다. 이때 상황 묘사·배경·등장인물의 표정 등을 문장으로 만든다. 등장인물의 관계를 그림이나 표로 정리한다. 의성어나 의태어로 표현된 만화 속 장면을 이야기로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만화를 고를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 모 교수는 “우선 주제의식을 따져 학습만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내지 않고 상상과 여운의 묘미가 있는지 살핀다. 역사나 인물 만화는 사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전문가가 집필이나 감수에 참여했는지 확인한다.

※독자 자녀의 독서 습관을 바로잡아 드립니다. 신청자 전원에게 한우리독서논술팀과 노명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진이 개발한 ‘NRI 독서종합검사’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신청:(사연과 연락처 기재)

일규의 독서 능력 종합 진단

독서 태도 독서를 잘 하기 위한 기본적 능력으로 독서 흥미 정도와 독서 전략을 얼마나 활용하는지 나타낸다. 일규는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높고 책의 특성에 따라 읽기 전략을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 책 속 정보와 상황을 융통성 있게 받아 들여 능동적인 태도로 독서를 할 줄 안다.

독서력 정확한 내용 이해를 바탕으로 정보 습득과 감상을 바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규의 경우 이해력과 사고력은 보통 수준으로 글의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만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독서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부터 천천히, 바르게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동적인 태도로 독서를 할 줄 안다. 독서력 독서에 필요한 이해력·사고력 모두 좋은 편. 글 내용 비교적 정확히 파악. 읽은 내용을 폭넓게 적용하는 능력 우수. 다양한 독서 경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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