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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43. 개발연구협의체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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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82 년 5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 대학에서 열린 '국가발전과 사회변환에 관한 국제학술대회' 에 국가발전.지역개발.공공정책 등을 연구하는 일단의 국내외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프린스턴대 임길진(54.KDI 국제정책대학원장)교수.컬럼비아대 김원(63.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교환교수.하버드대 박찬무(56.명지대 건축학부 교수)교환교수 등 한국인 교수들이 주도한 자리였다.

미국 교수로는 메릴랜드 주립대 켄 코리.뉴저지 주립대 샬라 엘샥스.프린스턴대 채스터 랍킨 교수 등이 자리했다.

같은 전공을 연구하며 서로 알고 지내던 이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한강의 기적' 이라 불리며 전세계가 주목했던 한국의 경제 발전 모델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회를 주도한 임길진 원장은 개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전까지 경제 발전 이론은 근대화론.종속이론 등에 치우쳐 있었다. 이것은 '한강의 기적' 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론들이었다. 우리는 학문과 인간의 결합을 큰 목표로 했고 나아가 학문적 사대주의를 벗어나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한국인의 시각으로 시도해 이를 외국인 학자들에게 알리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

나아가 이들의 관심은 한국의 발전 모델을 어떻게 다른 개발 도상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로 모아졌다.

물론 한 번의 학술대회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은 후학을 길러낼 일을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대학원생도 발표자로 참여해야 한다" 는 원칙으로 이어졌다.

MIT 원제무(51.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일리노이 주립대 전경수(50.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하버드대 김헌민(41.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등의 유학생이 발표자로 참가했다.

이들이 중심이 돼 개발도상국 도시지역정책협의체를 결성했다.

이 도시지역정책협의체를 모태로 해 87년 개발연구협의체(CODS.Consortium on Development Studies)가 탄생했다.

'인간.자연.기술의 조화' 를 모토로 하는 CODS의 궁극적 관심사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일.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이론과 행동의 조화, 학제간 연구의 강화를 내세웠다.

도시지역정책협의체가 학술단체의 성격이 짙었다면 CODS는 거기에 시민단체적인 운동을 가미했다.

전공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 조직의 형태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최상의 운용 방법이었다.

82년 학술대회를 준비할 당시 유학생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귀국해 여러 학문 분야의 교수가 돼 있었고 이는 CODS의 큰 자산이었다.

그 노정 속에서 미국에 유학했던 사람들이 서로의 학문적 관심사와 인적 연계망을 통해 CODS에 가담한 것이다.

충북대 이만형(43.도시공학).한양대 주만수(41.경제학).한남대 강병주(48.지역개발학).동국대 김영순(54.화학).이화여대 주영주(49.교육공학)교수 등.

미국 유학파 엘리트의 나라 사랑으로 출발한 CODS의 관심사는 점점 구체성을 띄어갔다.

87년 CODS로 변신한 뒤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2차 학술대회를 열었다.

좀 더 한국의 현실 문제에 접근해 보자는 취지였다.

한국에서 연구자들과 국가의 정책 브레인 등이 대거 초청됐다.

진념(59.기획예산처 장관)경제기획원 차관보도 발표자로 나섰다.

발표자들이 제시한 한국 발전 과정의 문제는 갈등 해결에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 그야말로 87년 한국의 민주화 분위기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었다.

이 '협상을 통한 갈등해결' 의 문제를 사고하게 되면서 이들은 활동무대를 한국으로 옮겨온다.

88년 7월 서울대에서 '협상에 관한 국제학술회의' 를 개최했다.

협상 문제에 관한한 가장 앞서 있던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3명을 초대하고 당시 국회의원도 발제자로 나섰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8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뒤 교수가 된 CODS회원들이 자기 자리를 확실히 잡아가면서 CODS의 면모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시민단체의 성격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번째 성과는 96년 '평화와 정의를 위한 세계 청소년 네트워크' (GYN.Global Youth Network for Peace and Justice)의 창설을 들 수 있다.

인터넷이 범국민적으로 퍼져 나가도록 한 한국 최초의 운동이었다.

그들이 주력한 일은 인터넷 이용 기반 조성과 네트워크 형성. CODS는 같은 전공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있어 학제간 연구가 가능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

GYN이 어린이 인터넷 보급운동을 하며 내세운 ^상호학습^풀뿌리운동^자발적 봉사^인간가치 지향^범학문적 통합과 지식의 적용 등 5가지 철학은 CODS의 지향점을 구현한 것이었다.

동국대 이혜은(47.지리교육학).홍익대 표창우(43.전산학).숭실대 신용태(37.전산학)교수 등이 운동을 주도하고 한국방송대 박태상(46.국문학)교수 등이 철학적.인문학적 기반 구축에 주력했다.

박교수는 "한국의 미래인 초등학생을 생각하는 학문활동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CODS의 지향점은 철저한 실사구시 정신 그 자체로 그저 자신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한국 지식인 사회의 폐쇄성을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통해 타파해 낼 것" 이라고 말했다.

CODS가 펼친 GYN운동은 교육정보공동체운동(EDUCOM)으로 이어졌다.

초.중.고.대학까지 포괄해 정보화 사회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이 운동에는 신극범 광주대 총장, 당시 안병영 교육부 장관 등 사회 각 분야 지도층과 정부도 도움을 주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99년에 CODS 회원들은 춘천.홍릉.홍파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영어 및 컴퓨터 연수교육을 실시했다.

미국의 초등학교와 자매결연도 맺어 주었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미국 초등학생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다보니 인터넷 음란물 등에는 하등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일을 제시하면 사이버 공간의 부작용 등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이었다.

CODS의 이러한 활동상은 기술발전과 인간 중심의 가치가 조화됐을 때 어떠한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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