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 ‘세종시 갈등’ 내전으로 치닫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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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부 갈등의 파열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안+α(알파)’를 주장하는 친박근혜계와 ‘원안 수정’을 관철하려는 친이명박계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2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한 정몽준 대표까지 ‘수정 검토’ 움직임에 가세하면서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환담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는 당에서도 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조문규 기자]

격한 반응은 친박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 친박근혜계의 핵심인 이성헌 제1사무부총장은 이날 세종시 수정 움직임에 항의하며 당직을 사퇴했다. 그는 당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세종시를 둘러싼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민주주의 구현의 중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당내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며 당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충청 지역에선 친박계 원로도 가세했다. 김용환 상임고문은 충남도당사에서 열린 ‘세종시 원안 촉구 결의대회’에서 정운찬 총리를 겨냥해 “총리 자리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행정을 하는 자리이지 법을 만드는 자리가 아니다. 착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학원 전 의원도 “충청을 갖고 장난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친박 진영에선 “일단 정부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견해도 많았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달 31일 “총리께서 국민과의 약속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잘 모르는 것”이라고 두 번째 강성 발언을 하자 기류가 급변하고 있다. 한 친박 중진 의원은 “이제 세종시를 되돌리려면 일단 정부 부처를 내려보냈다가 다시 올라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박 진영이 급속도로 결집하는 양상이다.

경남 양산 재선거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오른쪽)이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 선서를 마친 후 박근혜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친이 진영에선 ‘국민투표’를 들고 나왔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헌법에 따르면 외교·통일·국방·국가안위에 대한 사항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차명진 의원도 “최종 결정은 국민이 해야 하며, 국민에게 선택권을 드리는 게 맞다”고 했다. 친박계 설득보다 국민 여론을 환기해 세종시 수정을 관철하겠다는 어감이 강하다. 진수희 여의도연구소 소장은 세종시 문제에 대해 당 차원의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친박 진영에 대해 불편한 반응도 나왔다. 이 부총장 사퇴와 관련, 한 친이계 핵심 인사는 “이 부총장 사퇴는 이미 결정돼 있었고 본인에게 통보도 한 상태”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특히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를 피해 가지 않겠다는 청와대 입장이 나오면서 친이 진영에서도 강경론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정몽준 대표는 이날 이 대통령과의 면담 직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종시 문제를 다루기 위한 당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친박계의 허태열 최고위원이 “우리는 원안 추진이 당론 아니냐. 성급하다”며 반대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 핵심 측근은 “그간 세종시 논의에서 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며 “이 대통령을 만나면서 기구 발족 의지를 구체화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안상수 원내대표는 3일 있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잠정 논의 중단’을 제안할 예정이다. 정부가 새로운 안을 제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논의를 진행하자는 주장이다. 한 원내부대표는 “세종시를 둘러싼 실체 없고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하고 생활정치를 하자는 취지”라며 “이런 의미에서 연설문 제목도 ‘국회를 생활정치의 장으로 만들겠습니다’로 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강주안·권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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