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민유성 산은금융지주회장 “아시아 은행 두세 곳 인수 저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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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주변, 바람 잘 날이 없다. 크고 작은 기업의 근로자들이 자기 회사를 놔두고 산은으로 몰려와 시위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다. 산은이 기업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것을.

그 중심에 민유성(사진) 산은 행장이 있다. 대우건설·쌍용차·GM대우 등 대기업의 운명도 그의 손에 있다.

지난주 그는 무거운 짐 하나를 더 짊어졌다. 산은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회장을 맡았다. 2일 그는 지주 회장으로 첫 기자회견을 했다. 질문은 금융권 재편과 산업계 구조조정을 넘나들었다. 산은지주가 가야 할 출구에 대한 답은 명확했다. 금융 수출이다. 문제는 입구다. 산은은 예금 수신 기능이 취약하다. 인수합병(M&A)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누가 봐도 그렇다. 그는 “내년에 해외 금융사를 인수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 두세 곳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기업이 진출하는 곳에서 현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며 “레드오션인 국내 소매금융에서 경쟁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언론은 최근 산은이 인도네시아 뱅크센추리 인수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국내에선 추가로 다른 금융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소매 금융이 레드오션이라고 하면서도 그는 “금융 서비스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소외 계층이 많아 국내 금융시장이 더 성장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산은이 해외에서 은행을, 국내에선 보험·카드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과제는 또 있다. 기업 구조조정이다. 채권단이 가장 힘이 있을 때는 기업이 어려울 때다. 이때는 속도전이 먹힌다. 민 회장은 일 처리가 빠르다. 외국계 투자은행(IB)에서 일하며 몸에 밴 체질이기도 하다. 산은지주의 한 임원은 “밥을 어찌나 빨리 먹는지 함께하면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매각은 다음 주께 인수자의 윤곽이 나온다. 금호그룹도 서둘러 자구책을 만들었다. 민 회장은 “돌발상황이 없다면 금호그룹은 연말까지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기업의 처리는 장기전으로 들어가고 있다. 금융위기가 한풀 꺾이면서다. 민 회장은 당근을 내놨다. 그는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울 인수자가 나오면 산은이 인수 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대우건설이나 쌍용차 등 모두에 적용되는 얘기”라고 못 박았다. 경영 능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이들을 인수하는 데 주저하지는 말라는 신호다. 그는 “인수자금뿐 아니라 인수 후 운영자금, 연구개발 자금도 댈 수 있다”고 덧붙였다.

GM대우는 애초부터 그가 장기전을 각오했던 회사다. GM 본사만 유상증자를 하고 산은은 불참하면서 산은 지분(28%→17%)이 크게 줄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GM대우 자산을 다 담보로 잡았고, 주주로서 회계 감사 요구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당분간은 GM 돈으로 꾸려가고, 내년에 가면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 회장의 동기들은 그가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잘했다고 기억한다. 그에게 수학 과외를 받으려면 꽤나 공을 들여야 했다고 한다. 수(數)에 밝은 그가 산적한 현안에 어떤 수(手)로 대응할지 금융·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산은지주의 실질적 주인인 정부도 그를 지켜보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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