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후 처음 입연 김중권 전 청와대비서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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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대통령의 남다른 신임으로 현 정권 출범 후 1년10개월간 권력의 한복판에 있었던 김중권(金重權)전 청와대 비서실장.

그는 요즘 변호사 사무실(판사 출신)을 마련하고 자전적 에세이집 출판을 준비하는 등 개인적인 일에 분주하다.

'권력은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한다' 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지 3주 남짓이지만 뉴스의 초점에서는 멀어져 있다.

그런 그가 14일 밤 충정로 충정빌딩에 문을 연 새 사무실에서 퇴임 후 처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金전실장은 옷 로비 사건과 관련, "신동아그룹이 기독교계 지도자들을 통해 내게도 로비를 했다" 며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 부부는 솔직하지 못했고, 박주선(朴柱宣)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다" 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나 전국구 후보로 나설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다" 며 TK(대구.경북)지역에서 정면승부를 할 생각임을 분명히 했다.

金전실장은 마카오의 중국 반환식에 대통령 특사로 참석하기 위해 15일 오전 출국했다.

- 과거 특별한 연(緣)도 없는데 어떻게 金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나.

"당선자 시절 나를 비서실장에 내정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이렇게 지역적으로 강한 분립(分立)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호남 출신이고, 당신은 영남 출신이니까 손잡고 이 문제를 한번 풀어보자' 고 하셨다. 그게 이유일 것이다. "

- 金대통령이 다듬어온 동서화합 정책의 상징 중 하나가 金전실장의 존재였는데.

"나는 비서실장으로서 金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침과 철학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만큼 틈만 나면 영남으로 내려가 이를 전파하려 했다. 지난해 초 IMF 상황 속에서 대구의 유수한 건설업체와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몰렸을 때는 대통령에게 건의해 위기상황을 넘기도록 했다. "

- 그렇지만 영남의 체감 민심으로 볼 때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직 밑바닥까지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영남지역 여론 주도층은 우리를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

- 옷 로비.언론문건 사건, 서경원(徐敬元) 전 의원 사건 재수사를 둘러싼 여권의 혼선을 보면서 '직언하는 참모가 없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다' 는 등의 지적이 있다.

"그 때마다 솔직하게 민심의 추이를 말씀드렸고 수석들도 그렇게 했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다는 말은 과거 정권 때의 관계기관 대책회의 같은 것을 다시 만들라는 얘기로 들린다. 청와대 비서실이 정부 부처를 통제하려고 나서다가는 비서실 중심의 국정운영이 되고 만다. "

- 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이 옷 로비 사건에 대한 초기 사직동팀 수사결과를 金전실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나.

"올해 1월 朴전비서관이 그런 제보가 있다고 보고해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다. 朴전비서관이 2월 사직동팀 조사결과 혐의가 없다고 보고해 왔다. 대통령도, 나도 안도했었다. "

- 신동아그룹의 로비를 받은 적이 있나.

"朴비서관의 보고를 받은 며칠 후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의 동서인 온누리교회 하영조 목사를 비롯, 교계의 유명한 목사.장로들이 비서실장실로 찾아와 탄원서를 제출했다. 한장 한장마다 각기 다른 사람이 작성.서명한, 말하자면 공이 많이 든 것이었다. 이 사실을 대통령께 보고했다. 영향력있는 교계 지도자들의 말씀이라 굉장히 부담스러웠지만 며칠 후 崔회장은 구속됐다.

"

- 비서실장 재직 때 동교동계 출신과의 갈등설이 끊이지 않았는데.

"나는 야당 시절 어려움을 같이 하지도 않았고 동교동계도 아니었다. 대통령을 오래 모셨던 사람들은 내가 무임승차한 것으로 보여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쪽에서 무리한 요구가 있을 때 金대통령은 들어주지 못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총대를 멘 적도 많다. 그래서 오해가 있었다고 본다. 앞으로 당에서 대화하다 보면 오해가 풀릴 것으로 본다. "

- 비서실장 재직 때 특정 대학 출신들을 많이 챙겼다는 얘기가 있다.

"대통령의 인사원칙 중에는 지역 안배뿐 아니라 학교 안배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과거 정권에서는 서울대 일변도의 인사가 많았다. 그게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 달라. "

- 내년 총선에서 경북에 출마하는 어려운 길을 택했는데.

"동서화합을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는 몸을 던져야 한다. 또 지역발전을 위해 여권 인물을 키우자는 논리로 유권자들을 설득할 계획이다. "

- 여권 신당의 부위원장을 맡았는데 신당이 뜨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정당은 국민의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데 존재의 이유가 있다. 따라서 국민의 관심사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 신당의 정강.정책을 빨리 마련해 지지층을 형성해야 한다. "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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