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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사계] '바람난 중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40대 초반의 리슈롄(李秀蓮). 베이징(北京)의 한 컴퓨터회사에서 경리간부로 일하고 있는 그녀가 최근 이혼했다.

경찰 간부인 남편에게 '샤오미(小蜜.나이가 어린 정부)' 가 생긴 게 원인이었다.

처음엔 망설였다.

남편도 후회하고 고교 1년생인 딸을 생각, 꾹 참아볼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처입은 자존심, 특히 한번 금이 간 부부의 애정을 예전처럼 회복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혔다.

중국에서 이혼이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개혁.개방 이듬해인 지난 79년 31만9천여건에서 86년 50만5천여건으로 늘었고 95년엔 1백만건을 돌파했다.

97년엔 1백19만7천건이었다.

지난 12년 동안 1천만쌍 이상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혼 사유의 대부분은 배우자의 외도. 80년대 초반 배우자의 부정에 따른 이혼이 전체 건수의 14%였으나 80년대 후반에는 40%로 치솟았고 이젠 '대부분' 이라는 분석이다.

베이징의 하이뎬(海淀)구 기층(基層)법원에서 한해 처리하는 민사소송의 60%가 바로 이 이혼소송. 물론 법원 판결엔 한결같이 '감정 불화로 이혼을 허가함' 이란 도장이 찍힌다.

그러나 속사정은 거의 샤오미 같은 제3자의 출현 탓이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신흥 부유층이 급증한 게 주원인이라고 한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음욕이 인다는 '바오놘쓰인위(飽暖思淫慾)' 란 옛말대로라는 얘기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정파탄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이른바 '제3자' 에 대한 중국사회의 눈길이 그리 차갑지 않다.

개혁.개방 이전인 70년대엔 불륜의 사랑을 일컫는 말로 '퉁젠(通奸.간통)' '터우칭(偸情.사통하다)' '양한(養漢.서방질하다)' 과 같은 말이 사용됐다.

부정과 비난의 뜻이 담겨진 용어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부터는 비교적 객관적인 '제3자' 가 쓰이기 시작했고 90년대 초반엔 '훈와이롄(婚外戀.혼외정사)' 으로 발전했다.

요즘엔 보다 객관화된 단어 '와이위(外遇.부부외의 남녀관계)' 로 불린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같은 용어사용의 변천을 두고 외도를 부정시하던 가치판단이 희박해지고 점차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세태의 반영이라 분석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관영 CCTV에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18부작 드라마 '첸서우(牽手.손을 잡고)' 는 어느 중년 부부와 제3자간의 관계에 대한 묘사에서 제3자를 미화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이 드라마에서 '제3자' 는 가정파탄에 일조한 문제아가 아니라 뒤늦게 사랑의 파도를 타게 된 '애정의 지각생' 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실제 제3자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또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금력을 갖춘 40대 남성을 의도적으로 공략하는 샤오미들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각이 너그럽게 변한 것은 그 숫자가 너무 많은데다 바람 난 남성들이, 대개는 돈도 있고 사회의 지도층이기도 한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그럴싸한 이유로 합리화하기 위해 옹호하는데서 빚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요즘 베이징TV는 한국의 TV드라마를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기혼남녀의 사랑을 다뤄 한국에서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애인' 이다.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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