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표심"따라 흔들리는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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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각종 정책들이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총선을 겨냥한 선심 앞세우기에 농어민.노동.교육정책 등이 하루가 다르게 탈색(脫色)돼가고 있다.

이 와중에 이익단체들마저 표(票)에 약한 정치권의 맹점을 파고들어 밀어붙이기로 그동안의 숙원을 해결하려고 가세해 혼란과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농어민부채 경감대책을 마련, 통과시킬 예정이다.

2002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농업정책자금 3조원의 이자를 내리고 상환을 연기하며 현재 14조원에 이르는 농어민 상호금융대출도 상환조건을 대폭 완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는 농어민의 연대보증채무의 신용보증기관 인수를 비롯해 국제통화기금 (IMF)관리체제 이후 농어민부채 경감대책을 이미 네차례나 시행해왔다.

농어민상호금융이란 농민이 한 저축이다.

대출이자를 낮추려면 재정보조로 국민이 부담하는 길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4대 광역권 개발계획도 해당부처는 지역균형개발을 고려한 정책으로 총선과 무관하다지만 전체 예산이 70조원을 넘어 실현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논리로 흔들리는 정책은 그뿐만이 아니다.

'뜨거운 감자' 가 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도 노동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세를 펴자 정부와 정치권이 기다렸다는 듯 기름을 부어 문제를 키운 것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은 무노동 무임금의 상징이 돼 있고 노사간에 양보하기 어려운 미묘한 문제로 정치권이라 해서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말이다.

교원정년도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다시 이를 연장 또는 환원하는 개정법안을 추진 중이다.

한나라당이 다른 정책은 여권의 선심정책으로 비판을 퍼붓다가 유독 이 법 개정에 열을 올리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표 앞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게 실감나는 대목이다.

농어민.노동.교육정책 등은 무엇보다 국가의 기본정책이다.

그 기본정책들이 선거를 치를 때마다 조령모개(朝令暮改)가 된다면 국정기조가 흔들리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정치와 선거가 일정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한번 정한 정책은 법적.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합리화해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 테두리를 벗어나면 사회적 혼란과 후유증이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

IMF체제 2년, 외형적 위기를 극복한 지금 최대의 현안은 4대부문의 개혁으로 이제야말로 인내를 갖고 이를 추진해야 할 시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을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이미 공기업과 노동개혁 등의 상당 부분이 퇴색했고 정부.여당이 총선을 의식한 '표심(票心)' 영합에 무게를 두어 개혁이 초래할 고통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주의와 개혁은 결코 함께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인기영합주의는 정당한 개혁의 경계대상이 될 뿐이다.

내년 총선에서 이기더라도 포퓰리즘 속에 개혁과 개혁정신이 실종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내세워 정치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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