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론자 "쓸데없는 간섭" 개정론자 "수용할 만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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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 2일 국회에서 논의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론을 정면 반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다. 개.폐 논의가 한창인 열린우리당에선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폐지론자들은 "쓸데없는 간섭"이라고 비난했고 개정론자들은 "수용할 만하다"고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대법원이 존치론을 내세운 만큼 열린우리당이 이에 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맞섰다.

◆"청산해야 할 수구세력의 판결"=열린우리당의 일부 폐지론자들은 대법원에 대해 격한 반응을 보였다. 김원웅 의원은 3일 "이번 판결은 아직도 청산해야 할 낡은 수구세력이 곳곳에 엄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이들이 분단국가 성원으로 고뇌를 한 적 없이 평생을 기득권에 취해서만 살지 않았는가"라고 비난했다.

당내 긴급조치세대 모임인 '아침이슬'의 간사인 우원식 의원도 "대법원이 아직도 북한 동조세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한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폐지론자들의 격한 반응에 대해 당 내에서도 비판론이 제기됐다. 개정에 찬성하는 한 재선 의원은 "온 국민이 합의한 대법원의 권위가 있는데 거기에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정치인 자신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라고 비꼬았다. 같은 개정론자인 유재건 의원은 "판결에 논란 가능성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본다"며 "대법원은 특수한 성격을 감안하면 사회 전체 분위기를 감안해 판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법부 판단에 승복하라"=한나라당은 헌재에 이어 대법원까지 국가보안법 존치 판결을 내린 데 대해 반색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도 사법부의 판단에 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에선 사법부의 잇따른 판결로 지난 1일 마련한 자체 국가보안법 개정 방향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당시 헌재가 합헌 결정을 한 찬양고무죄 조항은 유지하되 인권침해 소지가 없도록 표현을 가다듬고, 불고지죄는 폐지하는 쪽으로 당론을 모았다. 김 대표는 대법원을 비판한 열린우리당에 대해 "여당이면서 다수가 완전 폐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안보 현실을 망각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보안법 논의 어디로=일단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당론을 정하느냐가 관심사다. 9월 중으로 정할 방침이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폐지론이 수적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세를 넓혀가고 있는 중도파의 개정론 주장도 만만찮다. 당 일각에선 "대법원의 판결이 오히려 폐지론자들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것"이란 주장을 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헌재와 대법원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특히 당론이 폐지로 정해질 경우 법조계의 판단이 한나라당과의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은 느긋하다. 언제라도 여당이 안을 갖고 오면 대법원과 헌재의 결정을 등에 업고 일전을 치를 태세다.

신용호.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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