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육참총장 '정중부의 난' 거론설 파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육군의 최고 수장인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이 쿠데타를 의미하는 고려시대 '정중부의 난'을 거론했다는 얘기가 군은 물론 청와대와 정치권 일각에 퍼지고 있다고 내일신문이 4일 보도했다.

남총장은 이와 관련, 이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며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청와대도 사실무근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인터넷 등의 유언비어 폐단이라는 지적과 함께 발언 유포 경위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내일신문에 따르면 문제의 발언이 나온 것으로 지목된 장소는 지난 31일 아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렸던 일반참모부장회의(일명 일참회의)로 남 총장(대장.육사 25기)이 주재했다. 이 자리에는 육본 인사참모.군수참모.기획참모를 비롯한 소장급 부장들과 중령 이상 실무부서 책임자 등 약 20명이 참석했다.

남총장이 발언했다고 유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어차피 문제가 되면 사표 쓰고 아무 때나 나갈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무슨 문민화냐. 옛날 정중부의 난이 왜 일어났는지 아느냐. 뭘 모르는 문신들이 (무신들을) 무시하고 홀대하니까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군검찰 독립은 무슨 황당한 얘기냐. 이는 인민무력부 안에 정치보위부를 두자는 것으로 북한식과 똑같다 … 난 이거 용납못한다 … (한 참석 간부에게)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고 이걸 막아라. 관련 의원을 따라다니며 로비를 해라. 못 막으면 이번에 진급은 없다. 만일 제도개선이 이뤄지면 법무병과는 폐지해야 한다 … (또다른 참석 간부에게) 성우회를 찾아가 로비를 해라.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그들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

남 총장은 이날 국방부 문민화, 획득청 설치, 군검찰 독립 및 수사지휘권 부여 등 최근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고, 그 과정에서 나온 민감한 발언이 일부 참석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고 이 신문을 보도했다.

◇군 확인작업=실제 그런 발언이 있었는지를 놓고 군 안팎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파장이 커지자 국방부와 청와대 등이 확인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1차 조사 결과 '남 총장의 진의와는 다르게 와전된 내용이 흘러나왔다'고 판단하고 1일 이를 윤광웅 장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은 "남 총장으로부터 '문민화에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며 "남 총장은 나의 지시와 구상을 실천에 옮길거라 믿는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군의 문제는 장관이 1차 책임을 지고 끌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엇갈린다고 내일신문은 보도했다. 육군 일부에서는 "여러 관계자들의 진술로 볼때 남 총장이 문제의 발언을 한 게 분명해 보인다"는 견해가 나오는 반면 합참 일각에서는 "내용이 거꾸로 알려졌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사실이라면 육군총장으로서 있을 수 없는 말을 한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김종민 대변인은 "이미 조사를 해서 사실무근인 걸로 판가름 난 것으로 알고 있다.국방부 기자들에게 다 클리어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남 총장은 청렴함과 통솔력으로 군 내부에서 두루 신망을 얻고 있다. 청와대도 군의 통합에 기여한 남 총장의 지휘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 25기인 남 총장은 육본 인사참모부장,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거쳐 지난해 4월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했다.

◇남총장은 전면 부인=남총장은 이와 관련, 내일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은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

남총장은 "내가 (올해로) 나이가 60살인데 그렇게 경솔하게 얘기했겠나"라며 당일 자신의 발언을 소개했다.

"내가 뭐라고 얘기했냐하면 문민화는 가야될 방향이다. 그건 맞는데 지금 육군의 경우 정책특기라고 해서 직능분야가 있다. 그것만 전공으로 하고 쭉 커온 장교들이 있다. 그런데 그게 갑자기 없어지면 그 장교들 전체가 문제가 된다. 그래서 국방부에서 (문민화 계획을) 토의를 한다고 하니 심층분석해서 피해를 최소해서 합리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육군의 의견을 제기해야 한다. 국방부에서 토의 날짜를 결정한다니 그 자료를 준비하라고 얘기했다."

남 총장은 "문민화는 전반적으로 추진돼야 하지만 육군 총장으로서 장교들에 대한 대책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총장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얘기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발언 과정에서 '정중부의 난'이 예로 거론됐냐는 질문에 남 총장은 "그건 황당한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거기서 정중부 얘기가 왜 나오겠나. 전혀 연관이 안되는 얘기 아니냐. 내가 나이 60인데 혼자 술먹고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간부회의 때 참모들이 쭉 앉아있는 자리에서 상식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겠느냐"며 "(장교) 개개인의 피해를 줄여줄 수 있게 합리적인 토의자료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고 답했다.

군검찰 독립 문제를 '인민무력부 속에 정치보위부를 두자는 북한식'에 비유했다는 부분에 대해 남 총장은 "그 문제는 신중해야 된다고 했다"면서 "군에 법무병과를 특별히 둔 것은 군 조직의 특수성때문이다. 그런데 검찰권이 지휘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됐을 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에 광범위하게 여론을 수집해 육군의 안와 의제를 낼때는 분명한 논리를 제시해라, 관련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남 총장은 '회의에 참석한 간부에게 여당 의원을 거명하며 로비를 해서라도 막으라고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는 정치인들이 전혀 없다"며 "육군의 명확한 논리를 세워 필요하다면 관련자들을 설득시키라고 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남 총장은 군내에 빠르게 번지고 있는 문제의 발언 내용에 대해 "아마 누가 의도적으로 이게 하는 거 같은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면서 "나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내일신문은 전했다.

<디지털뉴스센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