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씨 'DMZ 2000' 어떻게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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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수만 장의 그림엽서가 '삐라' 처럼 공중에 흩뿌려진다. 객석으로 떨어지는 엽서에는 전세계 어린이들의 새 천년 소망이 깨알같이 적혀있다. 관객들이 엽서를 집어드는 순간 새천년의 막이 오른다.

2000년 1월 1일 0시(한국시간) 전세계로 방영될 백남준씨의 'DMZ 2000' (새천년 위원회.단국대 21세기 예술경영연구소 공동 주최)공연의 첫 장면이다.

임진각에서 열릴 이 공연은 영국 BBC와 미국 PBS의 밀레니엄 기획인 ' 투데이 2000' 의 위성 네트워크를 타고 전세계 87개국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다.

이날 공연의 부제는 '새천년 통일 기원제' .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의 현장에서 세계를 향해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띠운다.

31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먼저 객석 좌우엔 동서양을 상징하는 당나라 비파 월금(月琴)과 첼로 모양으로 백남준씨의 비디오 작품이 각각 설치된다.

무대 위엔 끊어진 다리를 세우고 그 뒤로 숲이 투사된다. 나무들 사이론 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이 깔리고, 그 뒤로는 극복해야 할 장벽을 나타내는 대형 얼음 기둥이 놓인다. 또 1만5천명의 관객이 들어설 공간에는 우주의 다섯 가지 기운인 오행(五行)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다.

임진강 위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끊어진 다리와 철교에 조명이 들어오고 1부 공연인 '길놀이' 가 시작된다.

공연의 처음은 자유의 다리를 건너 비무장지대로 진입하는 길 열기. 이어서 지구상의 다섯 인종(아시안.백인.흑인.인디언.남미인디오)을 상징하는 다섯 명의 무당이 임진강변에서 전쟁과 독재, 억압으로 죽은 전 세계의 영혼을 건져 올려 각국의 춤사위로 이들을 위로하는 씻김굿이 펼쳐진다.

무당들은 아픔을 나타내는 다섯 가닥의 끈을 어깨에 메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16억원을 들여 제작한 평화의 종에 매단다. 임진강변의 공연은 영상을 통해 무대로 전달된다.

또 무대에선 세계적인 미국 멀티미디어 극단 핑총의 공연 '보자기' 가 펼쳐진다. '보자기' 는 21세기로 들어가며 우리가 짊어져야 할 역사의 짐을 상징한다.

2부는 한 세기를 돌아보는 '지난 천년의 문명과 한' .음악을 담당한 성기완씨는 "동서양의 현대와 전통은 물론 대중음악까지 포괄한 경쾌한 음으로 2부를 열 것" 이라고 밝혔다.

창조적이고 희망에 찬 문명의 시작이 공연과 영상으로 무대에 나타나고 하드록과 테크노 양식을 빌어 문명의 절정과 타락이 표현된다.

이어 미사일의 굉음과 함께 소외와 폭력, 전쟁과 기아를 상징하는 다국적 공연단 'HOBT' 의 해골 인형 공연이 펼쳐지고 원폭이 '투하' 된다. 원폭투하 장면은 특수 효과로 처리되며 낙진이 실감나게 표현된다.

3부 '새천년 맞이' 는 다음 세기를 상징하는 21번의 타종 소리로 시작한다. 동시에 백남준씨가 제작한 8m 크기의 비디오 조형물에서 '호랑이는 살아있다' 를 비롯한 작품들이 연속 상영된다.

또 새 천년에 대한 전세계 어린이들의 소망을 적은 2만8천여 장의 그림엽서가 공중에서 살포된다. 공연 연출과 제작 총감독을 맡은 단국대 이동일 교수는 "공연 마지막 장면이 클라이맥스" 라며 "무대 위의 끊어진 다리가 다시 이어지고 억압을 뜻하는 얼음기둥이 붕괴되고, 단절을 뜻하는 철조망이 불타오르는 대목은 가히 충격적일 것" 이라고 말했다.

임진각 공연은 아시아 위성을 통해 호주의 위성중계기지-영국 BBC-대륙간 위성으로 전세계로 방영된다. 서력(西曆)을 사용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 등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국가가 이를 시청한다.

6시간이 넘는 이 공연 중 전세계로 방영되는 부분은 32분. 이중 백남준씨의 작품이 14분을 차지한다.

한편 인터넷 웹(사이트 미정)상에선 공연 내용 전체가 방영되며 공연에 사용된 작품들은 영종도 신공항에 설치될 예정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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