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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뜨끈한 돌침대? 러시아선 죽은 사람만 눕는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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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모스크바에 있는 롯데플라자 전경.

백화점은 이미지를 판다. 문화와 트렌드도 고객에게 내놓아야 한다. 생필품 위주라 현지 입맛 공략이상대적으로 수월한 대형 마트와는 다르다. 그래서 해외시장 공략이 까다롭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진혁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해외 유명 백화점도 글로벌 경영에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다. 일본 이세탄백화점도 중국 진출 11년 만인 2004년 첫 흑자를 냈다. 그런데 롯데백화점이 이런 상황을 뚫어보겠다고 나섰다. 이 회사는 2007년 문을 연 러시아 모스크바점을 필두로 국내 업체 중 유일하게 해외로 나갔다. 2018년까지 35개 이상 해외 백화점을 내 해외에서 4조~5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한다. 현지 취재를 통해 롯데의 러시아와 중국 진출기를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러시아인 입맛 몰라 시행착오=이달 중순 모스크바의 번화가 노뷔 아르바트에 있는 21층 ‘롯데플라자’. 입점 일주일 된 1층의 이탈리아 명품 구두 브랜드 ‘지안마르코 로렌지’에선 부츠 한 켤레가 4만2000루블(약 170만원) 가격표를 달고 있다. 지하층 고급 수퍼 ‘아주부카 부쿠사’에선 스페인 최고급 햄 하몽과 철갑상어 알이 팔린다. 프랑스의 고급 생활용품점 ‘메송 드 파미’, 이탈리아 패스트패션 브랜드 ‘사시(Sasch)’처럼 국내서 찾아볼 수 없는 브랜드도 즐비하다. 이 건물은 롯데가 50년간 빌린 부지에 직접 지었다. 이 중 백화점은 지하 1층~지상 7층 연면적 3만8500여㎡. 복도와 여유공간, 진열대는 국내보다 두 배 정도 널찍하고 분위기도 고급스럽다. 회사원 코토브 알렉산드르는 “입점 브랜드와 의류, 구두가 마음에 들어 퇴근 후 즐겨 찾는다”며 “특히 레스토랑과 헬스센터, 뷰티 살롱이 한꺼번에 모여 있어 시간 절약이 가능한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개점 초기엔 시행착오투성이였다. 한류를 이용해 보겠다는 생각에 한국 제품 33개 브랜드를 들여와 팔았다. 그러나 1, 2년도 못 버티고 철수하는 업체가 속출했다. 추운 나라니 뜨끈한 돌침대가 잘 팔릴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에 입점한 한국 돌침대 업체는 한 개도 못 팔고 짐을 쌌다. 러시아에선 돌 위에 죽은 사람만 올라가는 풍속을 이해 못한 탓이었다.


◆현지 방식에 한국 장점 접목=러시아에서는 백화점마다 세일기간이 다르다. 동시 세일에 돌입하는 한국과 큰 차이다. 율리아 잉게르리브 마케팅 매니저는 “다른 백화점의 세일기간 정보를 빼내 이보다 며칠이라도 빨리 세일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국토가 넓다 보니 저층 쇼핑몰에 익숙하다. 고층으로 올라가기를 싫어한다. 잉게르리브 매니저는 “러시아 고객들을 고층으로 유도하기 위해 한 층 더 올라갈수록 더 좋은 경품과 선물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또 러시아의 우편배달 시스템은 불안정하다. 김선광 현지법인장은 “보통 세일 일주일 전에 안내용 우편물(DM)을 보내면 되는 우리와는 달리 한두 달 전에 우수 고객들에게 DM을 발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 3월부턴 시설과 입점 브랜드를 확 바꿨다. 2~3층의 경우 젊은 여성 고객을 위해 명품보다 다소 가격대가 낮은 고급 현지 브랜드들을 입점시켰다. 그러면서 현지인들에게 먹힌 한국적 특성은 유지하기로 했다. 현지인 입맛에 맞는 화려한 제품으로 인기를 끈 가방·소품 브랜드 ‘러브캣’, 러시아에선 유일하게 100% 블랙라마(최고급 모피)만 파는 우단 모피 프리미엄 숍, 동양적인 컨셉트를 살린 LG생활건강 화장품 ‘더히스토리오브 후’가 대표적이다. 박금수 해외사업부문장은 “매장 개편 전보다 매출이 50% 늘었다”며 “모스크바점은 이르면 2011년부터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스크바=최지영 기자

◆러시아와 롯데의 인연=한·러 수교 2년 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소련 대표팀 기업 스폰서를 롯데가 했다. 이철우 롯데백화점 사장이 당시 실무자였다. 구소련 대표팀은 그때 종합 1위를 했다. 구소련 체육부 장관이 감사의 뜻에서 이듬해 롯데 인사들을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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