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소세 폐지 이익금 업자 '그들만의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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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K약국에서는 자양강장제 소비자 가격의 11.5%나 차지하던 특별소비세가 얼마 전 없어졌는데도 B드링크제를 여전히 4백원에 팔고 있다.

"적어도 30원은 내릴 것" 이라던 정부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약국 주인은 "특소세가 없어졌는데 왜 값이 그대로냐" 는 손님들의 질문에 "사실상 우리도 이익 보는 게 거의 없다" 고 말했다.

지난 주말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 갔다온 李모(32.회사원)씨는 이용료 안내판을 보는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특소세 폐지에 따라 스키장 이용료가 크게 내릴 것" 이라는 뉴스를 들었으나 리프트 이용료는 5천원밖에 인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소세와 함께 교육세도 면제된 리프트 이용료의 경우 1만원 가량의 인하요인이 생겼지만 상당수 스키장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3일 청량음료.자양강장제.기호식품.화장품.가전제품.스키장이용료 등 20여개 품목에 대한 특소세를 폐지했다.

이로 인해 품목에 따라 11~28%의 인하 요인이 발생했다.

하지만 상당수 제조업체.유통업체들이 "인상 요인이 많이 누적돼 특소세 폐지분을 전부 내릴 수 없다" 며 버텨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극히 적은 형편이다.

화장품의 경우 제조사들이 각종 로션 공급가를 16% 인하하긴 했지만 소매점을 거치면서 실제 소비자가격은 평균 6%만 내려갔다.

이밖에 L사의 P음료는 11.5%를 내려야 하나 5.4%를, S식품의 커피 캔 음료는 16.3%보다 훨씬 낮은 9.4%만 각각 내려 소매점에 공급하고 있다.

전자제품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서울 M할인점의 경우 가전3사로부터 특소세(12%)만큼 내린 값으로 물건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할인점 관계자는 "가전 3사들이 '그동안 할인해서 물건을 공급해줬으니 이번 특소세 폐지분을 그대로 적용해주진 못하겠다' 고 주장하고 있다" 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이번 기회를 이용해 마진을 높이려 하고 있다.

설탕의 경우 제조업체들이 정부 안대로 11.5%를 내렸으나 주요 백화점과 할인점 등은 소비자 가격을 6~10% 내리는 데 그쳤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이달 중순까지 관련업체들이 특소세 인하폭만큼 가격을 인하하지 않았을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 등과 협의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고 말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박해경(朴海卿)기획실장은 "조만간 시장조사를 벌여 문제가 있는 업체에는 강력히 시정을 요구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고현곤.차진용.이상언.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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