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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도전현장] 7. 세계를 덮는 할리우드 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동지들도 미국영화 '타이타닉'을 한번 보기 바란다."

98년 3월9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이 광뚱(廣東)성 대표단에게 한 말이다.江주석은 "2억5천만달러를 들여 이미 10억달러를 넘게 벌었다는데 이게 바로 벤처 비즈니스가 아닌가"라고 강조했다.그는 "영화가 참 재미있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경쟁 상대인 중국의 국가지도자에게조차 경탄의 대상이 되고있다.즐기고 끝나는 것으로만 여겼던 문화산업이 이젠 수십만t의 선박,수만대의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능가하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세계를 뒤흔든다.

추수감사절 주말인 지난 11월28일.할리우드 한복판인 할리우드 대로와 선셋 대로에서는 할리우드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때이른 '할리우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가 열렸다.오후6시 할리우드 대로의 맨즈 차이니스 극장 앞에서 시작한 퍼레이드는 흑백 상하의에 붉은 띠를 두른 래코다웨스트 고교밴드 등 15개 밴드 요원들과 영화·TV·음악계 스타들의 행진으로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케이블TV를 통해 미 전역에 중계된 퍼레이드는 선셋 대로와 라브리어 거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지금까지 지낸 최고의 크리스마스"라는 올해 퍼레이드의 테마송을 연주·합창하며 2시간만에 막을 내렸다.테마송의 제목처럼 할리우드는 현재 최고의 호시절을 구가하고 있다.

'재미'를 만드는 능력에서 할리우드를 능가할만한 세력은 이제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액션영화의 고전인 007 속편에서부터 전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한 '토이 스토리 2',심지어 일본만화를 소재로 한 '포케몬'까지 '메이드 인 할리우드' 는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2억5천만달러라는 거액을 영화 한편에 투자할 여력을 가진 나라는 미국 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뛰어난 제작능력과 거대한 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는 새천년에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도권을 계속 쥘 수 있을 것인가.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엄청난 문화적·경제적 파급효과를 전세계가 절감하고 끊임없이 도전을 모색하는 현실에서 할리우드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지난 10월25일 할리우드는 이에 답했다.이날 할리우드의 전략가들은 'pop.com'이라는 인터넷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설립을 발표했다.영화는 물론 주문형 비디오,라이브공연 중계,게임 등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디지털화해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제공하는게 사업내용이다.이를 2000년 봄부터 시작한다.

영화사 드림웍스 창설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제프리 카젠버그,데이비드 게펜.그리고 '아폴로13호'·'너티프로페서'등을 만든 이메진영화사의 론 하워드 감독과 제작자인 브라이언 브레이저.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설립자로 벌칸벤처사를 운영중인 3백억달러의 재산가 폴 앨런 등이 손을 잡았다.

아이디어,디지털 기술,자본이 결합해 기존의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완전히 디지털화시키는 새로운 인터넷 문화산업에 착수한 것이다.이 회사의 출현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미래의 영화·연예 제작이 온라인·디지털화하는 경향을 맞아 기술 및 내용 면에서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필버그는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아무리 경쟁력이 있다 하더라도 디지털화가 늦으면 결국에는 도태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들이 제공할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목록은 지금까지 영화관이나 공연장,TV에서 보던 기존의 문화상품을 인터넷으로 옮겨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인터넷을 즐기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볼 수 있는 짤막한 인터넷 전용 프로그램인 에피소드극을 새롭게 도입했으며,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문화상품에 대한 광고와 인터넷 상거래까지도 포함시킬 예정이다.한마디로 문화산업의 본거지를 인터넷으로 옮겨놓자는 것이다.

pop.com을 통해 할리우드는 한바탕 혁명적 변신을 주도하고 이를 통해 21세기에도 상당 기간 세계문화산업을 주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pop.com의 야심찬 계획은 몇몇 독창적 인물과 거대 자본이 있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그 배경에는 탄탄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인프라가 깔려있다.

대표적인 것이 풍부한 인적 자원이다.할리우드가 자리잡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주변에는 영상 및 음향기술,미술 및 디자인,감독·연기자 및 시나리오 작가 양성학교를 비롯,수많은 엔터테인먼트 관련 학교들이 자리를 잡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요구하는 자질있는 인력을 공급한다.남캘리포니아 일대의 경영대학원들은 절반 이상이 할리우드 비즈니스 쪽에 특화돼있다.

게다가 90년대 후반 들어 할리우드 문화산업은 디지털 기술을 적극 수용,영화·방송·음악 등에 대거 활용함으로써 미디어·정보산업과 결합할 준비를 이미 마쳤다.현재 전체 영화의 50% 이상을 필름이 없는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할 정도다.조지 루카스 감독도 '스타 워스'의 다음 편을 모두 디지털 카메라만으로 찍겠다고 공언했다.'스타워스 4편'에서 컴퓨터그래픽 사용률은 95%에 이르렀는데,이는 모두 매킨토시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생성된 화면들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고급 컴퓨터 이미지 처리가 이젠 '쥬라기 공원'이나 '타이타닉'같은 블록버스터(흥행대작)영화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할리우드의 수백개 영상기술학교에서는 데스크톱 컴퓨터 하나로 감쪽같이 실제 장면처럼 만드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필수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상업성에 덜 물든 독립제작사의 영화들도 컴퓨터를 활용해 현란한 시각효과를 펼치고 있다.'마이크로 시네마'라고 불리고 있는 디지털 영화제작은 단편영화 등 저예산 영화에 더 많이 적용된다.디지털 카메라와 영사기는 화질이 기존 영화보다 2배나 더 선명하다.

현재 할리우드 주변에는 온라인으로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하는 디지털(프로젝터)극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연예산업 종사자들은 영화,음악,책 등 모든 매체들이 디지털 파일화되어 온라인으로 사고팔게 되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여기고 있다.3만4천여개의 미국 극장들은 5년이내에 과반수가 디지털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디지털 극장의 출현은 단지 영화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 전반에 파급효가가 기대된다.디지털 극장들은 현장과 같은 생생한 영상과 음질을 제공하며,위성수신 등을 통해 라이브 콘서트나 스포츠 행사,미인 선발대회 등 각종 유료 행사들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문화산업은 디지털화 및 인터넷과의 결합을 통해 문화산업의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면서 새 세기 들어서도 상당 기간 '문화제국주의'의 위세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할리우드 바깥의 사람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간에-.

할리우드=채규진(LA지사),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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