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구상에 길 열어준 J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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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JP(김종필총리)가 또 양보했다."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총리의 회동결과가 발표되자 자민련의 고위 당직자는 이렇게 탄식했다. JP가 DJ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이 명예총재로 있는 자민련 복귀시점을 연말에서 도로 내년 1월 중순으로 늦추기로 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만나기 직전까지 JP의 한 핵심측근은 "金대통령이 아무리 요청해도 연말에 총리직을 그만두겠다는 JP 결심엔 변함이 없다" 고 몇번씩 장담했으나 결과는 달랐다.

JP가 자신의 거취 변화를 늦춘 이유는 표면적으로 '국회 예산처리 등 남은 국정현안 해결후 내년 1월 중순에 개각을 하자는 DJ의 요청 때문' (李德周총리공보수석)이다.

그러나 총리실과 자민련 관계자들은 '진짜 이유' 라며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우선 이들은 후임총리 문제를 둘러싼 여권내의 진통을 들었다. 당초 청와대와 총리실은 합의사항에 '후임 총리는 자민련 쪽에서 추천한다' 는 내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흘렸다.

TJ(박태준총재)총리론을 다분히 의식한 포석이었다. 반면 정작 발표에서 이 부분은 제외됐다.

DJP회동보다 3시간 앞서 金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TJ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총리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한 반면 TJ는 중선거구제 관철을 선행조건으로 내걸어 회동 결과가 별로 좋지 못한 것으로 안다" 고 귀띔했다.

때문에 후임총리 문제를 둘러싼 DJT 삼각조율의 진통이 결과적으로 JP의 총리직 사임 시기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엔 국민회의-자민련의 합당문제와 관련한 또다른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자민련의 한 소식통은 "JP가 복귀시점을 늦춘 것은 DJ가 염두에 두고 있는 정치일정을 JP가 수용한 것" 이라며 "합당 가능성은 더 커졌다" 고 분석했다.

JP는 조기 당 복귀이유로 그동안 "총선을 독자적으로 치르기 위해선 자민련 내부 정비가 시급하다" 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복귀 시기를 늦춘 것은 이 구상을 유보한 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JP는 회동후 발표내용을 구술하면서 "양당은 끝까지 어떤 경우든 공조한다" 고 강조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소선거구제를 전제로 하면 자민련이 현 의석을 유지하기 어려운데다 현실적으로 연합공천이 어렵다는 점에서 합당이 불가피하다" 고도 말했다.

어쨌든 청와대측은 이날 회동이 그동안 자민련의 보수대연합 추진, JP의 독자행보 천명 등 공동정권내 불협화음을 일소하고 공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신 DJP합의' 라며 환영하고 있다.

김진국.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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