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준 '마지막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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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두 대학의 전직 총장이 정년을 맞아 ‘마지막 수업’을 잇따라 열어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수업 방식이며 분위기는 이들이 몸 담았던 대학 풍토와 흡사했다. 한쪽이 막걸리 분위기라면 또다른 한쪽은 와인에 가까웠다.

주인공은 경북대 박찬석(64)전 총장과 계명대 신일희(65)전 총장.

박 전 총장은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고, 신 전 총장은 얼마 전 계명대 명예총장으로 추대돼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마지막 강의만큼은 똑같이 경륜과 학문적 깊이로 번득였다.

박 전 총장의 '고별강연'은 지난 30일 저녁 경북대에서 열렸다. 강의실은 동료 교수와 제자, 지인들로 가득 했다.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는 강연에 앞서 '어린 시절 늑대를 잡은 이야기' 등 박 전 총장의 숨은 일화를 소개해 폭소를 끌어냈다.

지리학을 전공한 박 전 총장은 이날 중학시절의 성적 위조 추억 한 토막을 끄집어냈다. 배운 것 하나 없는 아버지의 기대를 안고 대구로 유학와 놀기 좋아하는 천성 때문에 68명 가운데 68등을 했다는 것. 그는 아버지에게 차마 그 성적표를 보일 수 없어 1등으로 고쳤고, 아버지는 아들의 말만 믿고 전 재산인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잔칫날 제가 받은 스트레스는요. 엄청 났습니다. 허허허…."

그는 먼훗날 대학교수가 된 뒤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자 빙긋이 웃으며 '나도 고친 줄 알았다'고 하더라는 것.

"아버지는 정말 탁월한 안목을 지닌 '교육자'였습니다…."

스스로를 발가벗긴 솔직한 강연은 거침이 없었다.

28일 저녁 인터불고 호텔에서 있었던 신일희 전 총장의 '마지막 수업'은 또다른 맛이 있었다.

행사는 아기자기했다. 제자들은 마지막 수업 교재를 만들고 추억의 사진을 스크린으로 비쳤다.

특히 몇몇 제자의 스승 회고담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엄격한 단어 외우기 수업, 유학 떠나는 제자에게 몰래 넣어 준 학비, 종강때 나눠 준 정성들여 만든 양초….

독문학을 전공한 신 전 총장은 이날 '인간조건'이란 제목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유머로 50분간 수업을 이끌었다.

강연 요지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유배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해 독일의 시인, 공자와 추사로 이어졌다.

"유배가 숙명이라면 해탈은 유배 중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 선생에게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같아요…. 지금이 승리의 계절이든, 구속의 계절이든, 또는 유배의 계절이든, 올곧은 마음만 지키면 어디서나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박수가 쏟아졌다.

신 전 총장의 연세대 교수 시절 제자인 이진우 계명대 총장은 "정년이 유배의 탈출이 되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두 총장의 마지막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이 같은 고별 강연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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