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구직전쟁 심각… 40여만명 갈곳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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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K대 경영학과 4학년 K씨(27)는 지난 9월부터 대기업.증권사 등 10여 곳에 원서를 냈지만 절반이 넘는 곳으로부터 아예 서류전형에서 '퇴짜' 를 맞았다.

그나마 면접까지 간 세 곳에서마저 불합격되자 그는 "명색이 상위권대 인기학과에 다니는데 서류전형에서 막힐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며 허탈해 하고 있다.

지난해 S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마친 뒤 외국계 회사 취업을 준비해온 J씨(23)는 최근 외국계 제약회사와 생활용품 업체에 원서를 냈지만 입사시험조차 치르지 못했다. 두 곳 모두 경쟁률이 2백대1을 넘는 바람에 지원자 중 20%에게만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지만 대졸자 등 20대 청년층의 취업난은 여전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분기 평균 20대 실업자는 40만7천명으로 97년 동기의 23만1천명보다 두배 가까이 늘었다. 또 전체 실업률이 4%대를 보인 지난 10월에도 20대 실업률은 8%를 육박,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끝나가고 있다' 는 진단을 무색케 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7월 낸 '청년층 실업현황과 고용촉진 대책' 보고서도 지난 3년 동안 20대 대졸자(전문대 포함)의 실업률은 ▶5%(97년 12월)▶8.7%(98년 11월)▶10.1%(99년 4월)로 당분간 20대 고학력 실업난이 심각할 것으로 예견했다.

실제로 올 하반기 대기업의 신규채용이 늘고 일부 업종에서 활발한 구인활동을 펼쳤음에도 청년실업이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취업전문기관들은 "올 하반기에 쏟아져 나온 인력은 졸업예정자 20만명에 취업 재수생 30만명을 더해 50만명선이지만 대기업.외국계 회사 등을 포함한 내년 초까지의 전체 정규직 채용 인원은 많아야 8만5천여명에 그칠 것" 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졸자 10명 가운데 8명은 일용.임시직에 머물거나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보통신.금융 등 채용을 늘린 업종도 일부 명문대 전공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이다.

최근 원서를 접수한 정보통신업체 D사의 경우 명문대 출신 해외 유학파들은 물론 평균학점 3.5 이상의 성적 우수자들조차 서류전형에서 대거 탈락, 토익 9백점 이상인 응시자 1천여명 가운데 1차 시험 통과자가 1백여명에 불과했다.

취업 한파가 계속되면서 대학가에선 구직에 대한 '공포증' 마저 생겨나고 있다. 매경리서치센터가 최근 전국 대학생 1천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취업에 대한 두려움으로 졸업하기 싫다" 고 답변했으며, 갓 입학한 1학년도 절반 이상(57.6%)이 "취업 고민을 한다" 고 응답했다.

지난 추석 연휴엔 졸업을 앞둔 한 대학생은 몇차례의 취업 실패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화여대 학생상담센터의 한 상담원은 "한달에 10명 정도의 학생이 취업이나 진로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대인기피 등 사회부적응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고 말했다.

이상언.배익준.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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