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확대…이익 챙기자' 다국적기업 발벗고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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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시애틀〓외신종합, 하지윤 기자]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시애틀에서 다국적기업들이 자사 이익을 위해 펼치는 로비전이 치열하다.

USA투데이 등 미 언론들은 포천 랭킹 5백위 안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대기업과 무역 관련 기업.단체들이 시애틀에 몰려들어 '자유무역을 확대해야 한다' 는 홍보와 물밑 로비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생생히 전하고 있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보잉사는 물론 휴렛패커드(HP).UPS 프록터 앤드 갬블.아마존 등은 아예 총수들이 시애틀에 상주하며 실무진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최고경영자들에게 출장용 소형 경비행기를 임대해주는 EJA사는 "WTO 각료회의가 열리기 직전 하루 4백50여대가 시애틀 상공을 날았다" 며 '시애틀 러시' 를 극명하게 전했다.

이들 업체들이 시애틀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관세를 내리고 보조금을 없애는 자유무역 확대가 자사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고수하자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큰 이익이 걸리자 체면과 격식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부 업체는 WTO에 반대하는 시위자들의 행동을 두고 '서커스' '망나니' 라는 독설까지 퍼부었다.

미국 내 3백개 무역 관련 기업체의 연합체인 전미(全美)무역연합은 사무실 얻기가 힘들자 낡은 보일러실까지 사무실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50여개의 전화를 통해 각국의 협상대표들과 기자들이 기업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즉시 최고경영자와 경제학자.교수들을 연결해준다. 이 과정에서 기업체의 논리가 각국 대표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다.

이들 기업은 자유무역 확대라는 논리에서 미 행정부와 행보를 같이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이해와 상충되면 자국의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클린턴 대통령이 최근 시애틀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각국 대표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기를 원하며,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국가는 무역제재를 받아야 한다" 고 말하자 이들 기업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고 성토했다.

클린턴의 발언은 노동분야에서 미국의 당초전략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연구그룹을 결성하는 데 그치자는 것에서 너무 앞서나갔다는 이유에서다.

최고경영자들은 협상국 대표들과의 로비를 위해 돈도 아낌없이 쓰고 있다. MS와 보잉사를 비롯한 65개 업체는 이번 행사를 위해 시애틀 접대기구(SHO)를 발족, 9백50만달러를 모금했다.

모금 이유는 시애틀 회의를 민간차원에서 지원하자는 것이었지만 속내는 다르다. 예컨대 25만달러를 기부한 기업체는 1백35개 WTO 회원국 각료들과 공식 만찬에서 자리를 같이하고 협상의 진척상황을 시시각각 보고받을 수 있다. 돈을 통해 협상대표들에게 더 가깝게 접근, 자사 이익을 챙기자는 것이 본심인 셈이다.

결국 기업들의 시애틀 러시는 'WTO가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는 NGO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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