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월가, 경기회복 분위기 타고 정부 방침에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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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액 보너스 관행으로 비난 받아온 미국 기업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간 여론의 눈총 때문에 몸을 사렸지만 경기회복 분위기에 편승해 정부의 임직원 보수제한 조치에 반발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구제금융을 상환하지 않은 7개 대형 기업 임원의 연봉을 50% 삭감하기로 했다. 미 의회도 금융감독·규제를 대폭 강화한 법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 기업 역사상 거의 전례가 없던 일이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로 불리는 미국 대형 은행·기업들의 지나친 공격 투자와 고액 보너스 관행을 겨냥한 조치다.

◆잭 웰치 “기업에 악영향”=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CEO)는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 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지나친 연봉 제한 조치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것을 막아 결국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기업도 국가에 세금을 내고 있다”며 “경쟁사들이 지키지 않는 규율에 얽매여 경영에 제약 받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제금융을 받은 AIG·뱅크오브아메리카(BOA)·제너럴모터스(GM) 등에 대한 연봉 삭감 및 보너스 제한 조치를 문제 삼은 것이다.

웰치는 이어 “경영자들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며 “정부의 규제가 기업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샌퍼드 웨일 전 시티그룹 CEO도 나섰다. 웨일은 “월가 금융회사에 대한 보수제한은 인재 유출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규제는 우수 인재를 외국 회사로 빠져나가게 만들고 미국 금융의 전통적인 리더십을 해칠 수 있다”며 “임직원에 대한 보상이 단기 이익보다는 자본이익률(ROE) 증감 같은 장기 이익을 기준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권 로비도 활발=의회의 분위기는 강경하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대형 금융회사가 파산하면 경쟁사들이 일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강력한 금융규제 법안 마련을 검토 중이다. 지난해 금융위기 때처럼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일을 막고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파산 금융회사를 인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간 금융회사들의 급여에 불간섭 원칙을 고수했던 연방준비은행(Fed)도 “금융사들의 과도한 위험 투자를 유발하는 고액 보수체계를 철저히 감독하겠다”고 밝혔다. Fed는 28개 대형 금융회사들의 급여체계를 검토해 시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월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대형 금융회사들은 금융위기 이후 중단했던 정치권에 대한 로비에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 모건스탠리는 9월에 11만 달러의 정치 후원금을 냈다. 60%는 금융규제 법안을 막으려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기부됐다. BOA·JP모건·골드먼삭스 등도 정치권에 대한 지출을 늘리고 있다. WSJ는 “일부 금융회사는 정치 후원금과 별도로 로비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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