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TV 흉내 내다간 외면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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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만에 ‘팝스 다이얼’을 부활시킨 김광한(左)과 ‘유열의 음악앨범’ 10년동안 ‘아침의 연인’으로 불려온 유열. 최승식 기자

비디오가 라디오를 죽인다고 했던가. 아니다. 아직도 라디오는 집에서, 자동차에서, 또 인터넷에서 즐기는 친숙한 존재다.

라디오 DJ의 터줏대감 격인 김광한과 유열이 1일 만나 '라디오 예찬론'을 폈다. 김광한은 10년 만에 부활한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경인방송 iFM) 진행자로, 유열은 다음달 1일 10주년을 맞는 '유열의 음악앨범'(KBS2 FM) 진행자로 각각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광한은 1982년부터 12년 동안 KBS2 FM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 이름을 그대로 따와 7월 iFM에서 방송을 시작했다. 오는 18일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팝스다이얼 부활기념 공연'을 한다. 유열은 15일 KBS홀에서 10주년 기념콘서트 '십년지애(十年之愛)'를 연다.

"라디오는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간적인 미디어"라며 김광한이 말문을 열자 유열은 "청취자의 삶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반하는 친구 같은 존재"라고 장단을 맞췄다. 유열은 "라디오 때문에 제 일을 못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이런 자부심 한 편에는 우려도 있다.

"인터넷 시대.영상 시대에서 라디오가 소멸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론도 있었죠."(유)

김광한은 "60, 70년대 음악다방에서 DJ가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며 청춘을 보낸 세대에게는 FM DJ가 우상이었지…"라며 아련한 향수를 내비쳤다.

그래도 이들은 "분만실에서 진통할 때 듣고 힘을 냈다는 산모의 인사는 라디오 DJ가 아니면 받지 못할 것"(김), "인터넷 덕분에 외국에서 듣고 사연을 보내는 청취자도 많다"(유) 등 밝은 얘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들은 저녁시간대 라디오 방송이 지나치게 10대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며 한목소리로 걱정했다. TV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 등 오락 프로그램을 흉내내면 라디오의 매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유열은 "FM 프로그램의 주인은 음악이어야 한다"며 "연예.건강.스포츠.인생상담 등을 종합선물세트처럼 줄줄이 엮어 코너를 만들면 곤란하다"고 못박았다. "말좀 줄이고 음악을 틀어달라""라디오에 나와 장난치지 마라"는 등의 불만이 있는 청취자가 다수라는 것. 이런 '소리없는 다수'가 자기 주장을 곧바로 내는 어린 청취자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김광한도 "TV처럼 만들려고 하면 라디오가 줄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98년 KBS2 FM에서 '김광한의 골든 팝스'를 시작하면서 인터넷 중계방송을 시도했던 경험을 말했다. "TV처럼 '보이는'라디오를 만들어보려 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청취자가 지나친 자극을 외면했던 것이다.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대중음악 시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유열은 "90년대 중반 이후 대중음악이 10대 중심으로 성장하며 폭이 좁아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며 "MP3 등이 등장하면서 10대가 음반을 사지 않자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김광한 역시 "90년대 초 조지 마이클도 '10대 음악이 판치면 그 나라 대중음악은 죽는다'고 말했다"고 거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죽지는 않을 거예요. 요즘엔 음반 판매보다 모바일 서비스 수입이 더 많은 가수도 있거든요. 요 몇 년이 과도기여서 그렇지 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수익 모델이 있을 겁니다." 가수이기도 한 유열이 본 우리 대중음악의 앞날이다.

이지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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