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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탈출 장애 탈출 우리도 간다 ⑤ 시각장애인 낚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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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인 중에서도 낚시를 즐기는 이가 많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소리로 고기를 잡으면 된다.

여기 이 사진. 한 남자가 한가로이 강 낚시를 즐기고 있다. 하나 찬찬히 들여다보자. 두 눈을 모두 감고 있다. 지팡이도 보인다. 맞다. 사진 속 주인공 이채연(45)씨는 시각 장애인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이른바 ‘전맹(全盲)’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고민거리가 생기면 무작정 장비를 챙겨서 나와요.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이랑 밤을 새우기도 하는 걸요.”

이씨가 처음 손맛을 본 건 1990년이다. 친구들 따라서 충청도 어느 저수지에 갔다가 월척이 무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그 손맛, 묵직하게 손끝을 찌르는 그 울림, 그걸 못 잊어 부지런히 낚시를 다녔다. 틈나는 대로, 아니 솔직히 말해서 돈 생기는 대로 장비를 하나 둘 사들여 지금은 낚싯대만 5개다. 가방에서 낚싯대를 꺼내 조립하고 바늘에 갯지렁이를 끼우고 낚싯대를 던져 설치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앞을 못 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씨처럼 낚시를 즐기는 시각 장애인은 의외로 많다. 보통 동호회를 꾸려 활동하는데 동호회는 지역별로 하나씩 다 있다. 장애인 단체에서 1년에 네 차례 바다 낚시 대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면 전국에서 낚시 좀 한다는 시각 장애인이 다 모인다. 말 그대로 축제가 벌어진단다.

이씨와 같은 시각 장애인은 오로지 릴 낚시다. 찌가 수면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을 볼 수 없어서다. 대신 그들은 소리로 고기를 잡는다. 낚싯줄을 릴에 걸어 힘껏 던진 다음 방울 소리를 기다린다. 눈이 안 보이면 귀가 밝다고 했나. 방울 소리만 들어도 어느 낚싯대에 고기가 달렸는지, 얼마나 다부진 놈이 문 건지, 지나가는 바람이 방울을 흔들었는지 이내 알아차린다. 그래도 앞이 안 보인다. 불편한 점이 없을 리 없다.

“혼자서는 못 오죠. 안내자가 꼭 있어야 합니다.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잖아요. 낚시 좋아하는 친구 몇몇이랑 같이 와요. 흐릿하나마 사물이 구분되는 약시 친구가 몇 명 있거든요. 사실 아들이랑 낚시를 오게 된 것도 안내자 때문이었어요. 낚시는 하고 싶은데 친구들이 시간이 안 맞잖아요. 그래서 아들을 꼬였죠. 다행이 아들 놈이 낚시를 좋아해서 지금은 아들 놈이 먼저 ‘아빠 우리 낚시 안 가요?’ 하고 물어와요. 아빠 손 이끌고 씩씩하게 앞장서지요.”

이씨의 집은 서울 방화동이다. 걸어서 15분이면 방화대교에 닿는다. 한강시민공원 강서지구가 끝나는 곳에 장어와 숭어가 제법 올라오는 포인트가 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김포공항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강변에 보이는 강태공 중에 이씨도 있었던 것이다. 앞서 그는 고민이 생기면 여기로 나온다고 했다. 어떤 고민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고민이죠. 먹고살기가 힘들잖아요. 그래도 낚싯대 앞에 앉아있으면 그 순간이나마 고민을 잊게 돼요. 그 재미에 찾아오는 거죠.”

이씨는 84년 화재로 실명했다.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바람에 시력을 모두 잃고 말았다. 방황 끝에 맹인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안마 기술을 배워 지금은 인천의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고 있다. 하나 한 달 벌이가 겨우 80만원이다. 80만원도 고정 수입이라고 기초생활보호대상자 혜택을 못 받는다. 그래도 그는 네 식구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이씨는 애써 잡은 고기를 모두 풀어준다. “이 아까운 걸…” 하고 묻자 “고기 잡으려고 여기 온 게 아니잖아요?” 하고 허탈하게 웃는다. 앞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낚싯대 앞에 앉아있는 마음은 한결같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손으로 보는 곳’ 광릉수목원·국립중앙박물관

관광에서 ‘관(觀)’은 ‘보다’란 의미다. ‘빛을 보다’는 본래 뜻이 어떤 연유로 ‘낯선 문물을 구경함’으로 바뀌었는지 알 길 없으나, 아무튼 관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는 행동’이다.

하나 시각 장애인은 휠체어 장애인보다 야외 활동이 훨씬 활발하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어서다. 낚시 동호회는 전국에 20개가 넘고, 등산 동호회는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다. 각종 레포츠를 즐기는 시각 장애인도 많다. 패러글라이딩·열기구·수상스키 등 극소수 매니어가 즐기는 레포츠에도 시각 장애인이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이 올해 주최하는 대회만 해도 26개다. 볼링·사이클·탁구 등 일반 종목을 비롯해 시각 장애인이 즐기는 ‘골볼’이란 구기 종목도 열린다. 한국의 골볼 수준은 세계 최정상급이란다. 한국시각장애인협회에 따르면 현재 정부 기관에 등록된 시각 장애인은 22만 명이다. 이중에서 18만 명은 잔존 시력이 있어 이동하는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비장애인에게 휠체어 장애인보다 시각 장애인이 자주 보이는 까닭이다.

시각 장애인이 추천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우선 광릉수목원(www.kna.go.kr). 자동 해설기를 무료로 빌려주고, 표찰을 점자로 만드는 등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특히 난대 식물원은 ‘손으로 보는 식물원’이다. 시각 장애인이 손으로 감촉을 느끼고 향을 맡을 수 있도록 시설을 갖췄다. 031-540-2000. 시각 장애인이 전시 유물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축소 모형을 제작해 전시 중인 박물관도 있다. 국립 중앙박물관(www.museum.go.kr)과 ‘만지는 박물관’으로 유명한 대구대 중앙박물관(053-850-5623)이 대표적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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