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엄청 빨라진 수읽기 "이젠 진드기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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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희성5단이 끝내 오스람코리아배를 차지했다. 지난달 29일과 30일 바둑TV에서 사상 최초의 심야대국으로 열린 오스람코리아배 신예연승최강전 결승전에서 이희성5단은 고근태2단을 2대0으로 꺾고 생애 첫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희성은 만22세지만 프로에 입문한 지는 올해 10년째다. 입단 당시엔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지난 10년간 이희성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거의 무명으로 지냈다. 그가 얻은 유일한 별명은 '진드기'. 한국기원 3대 장고파로 꼽히면서도 안조영8단이 '장고의 제왕'이란 별명을 얻은 것과 대비된다. 한마디로 실력은 별로인데 지긋지긋하게 물고 늘어진다는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지난해부터 이희성의 눈에 바둑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장고 속에서 바둑의 본질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래도 속기전인 한국리그에서 '피더하우스'팀이 그를 주장 다음의 2장으로 지명했을 때 관계자들은 바둑을 잘 모르는 피더하우스 팀을 동정하는 분위기였다. 이희성은 장고파라서 속기에 안 맞고 실력도 2장급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희성은 이때부터 더욱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속기전인 한국리스와 오스람코리아배에서 연승하는 것도 신기했다. 이희성의 바둑은 크게 달라졌다. 그는 마치 어느날 꿈을 깬 사람처럼 수읽기가 빨라졌고 감각도 좋아졌다. 4월 이후엔 26승3패로 거의 90%에 가까운 최고의 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희성은 오랜 장고 속에서 그토록 손에 쥐고 싶어했던 바둑의 끈을 드디어 붙잡은 것으로 보인다. 대기만성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이제 동료들은 그를 진드기라 부르지 않는다.

한편 이번 오스람코리아배 결승전은 오후 10시30분에 시작해 자정을 넘겨 끝나는 사상 최초의 심야대국으로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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