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TV ' 17일 … "겹치기 중계 너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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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7일간의 아테네 올림픽 동안 선수들의 눈빛만 날카로웠던 게 아니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으려는 방송사들의 장외전 또한 치열했다. "우리가 (시청률로) 축구 1등"(SBS)이라는 식의 홍보도 활발했다. 메뉴가 달랐다면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KBS.MBC.SBS 방송 3사는 공동중계나 분업 등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시청자들은 여전히 주요 경기 위주의 '붕어빵 중계'를 맛봐야 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도 거의 똑같은 경기와 화면. 여기에 이름값 위주로 해설자를 스카우트하다 보니 수준 이하의 진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들이다. 메달 대신 미디어로 본 아테네 올림픽. 어떤 기록과 과제를 남겼는가.

◆ 통계로 본 아테네 올림픽="이번엔 재미보지 못할 것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방송 광고시장에선 이런 예측이 돌았다. 경제가 워낙 안 좋은 데다 시청률이 낮은 새벽에 중계가 몰려 광고효과가 떨어지리라 본 것.

이런 기류는 수치로 반영됐다. 2일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율은 53%선으로 추산된다. 600억원어치의 판매분 중 320억 정도만 팔렸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의 판매율 97%, 1996년 애틀랜타 때의 93%에 비하면 반 토막인 셈이다. 방송 3사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지불한 중계권료가 약 186억원인 만큼 130억원이 넘는 이익을 냈지만, 평소(110억~120억원)와 비교할 때 '올림픽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국민의 관심은 높았다. 역대 대회보다 오히려 시청률이 뛰어오른 것이다. 한 예로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경기를 보면 여자 양궁 단체전의 종합 시청률은 54.9%. 유도 이원희 선수가 첫 금메달을 안겨준 순간은 53.5%였다. 2000년엔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경기가 레슬링 심권호 선수의 결승전(38.8%)이었고, 96년은 여자 양궁 결승전으로 21.9%에 불과했다.(닐슨미디어리서치) 방송광고공사 관계자는 "올림픽으로 재미 없는 일상을 잊을 수 있어서인지, 실업자가 많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시청률 예상이 빗나갔다"고 말했다.

◆ 중복편성.해설자 자질 도마에=방송사들은 인기 드라마의 결방도 불사하는 등 올림픽에 '올인'했다. 이 과정에서 금메달 위주의 보도 태도는 다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중복편성과 종목별 편중 등으로 인한 비난에 시달렸다. 스포츠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선택할 채널도 없었다. 이와 관련, 방송사 홈페이지에는 "독과점 체제의 방송사 횡포""전파 낭비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한 시청자는 "축구에 대한 과도한 흥분으로 올림픽인지 월드컵인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그런가하면 이번 올림픽 때는 역대 대회와 달리 진행자들의 자질시비가 크게 일었다. "출렁출렁합니다"(여자역도)"남자들은 같이 근육이 움찔하는 느낌을 받는데 여자들은 어떻죠"(남자유도) 등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이 있었는가 하면, 해설은 없이 "힘을 내야 합니다"만 외친 해설자도 있었다. 또 "쟤들이 쫄았어요" "지 몫만 하면 돼요"라는 식의 거친 발언도 있었고, 자신이 선수인 것처럼 흥분하거나 반말조로 일관한 해설자도 있었다.

◆ "중계방식 선진국형으로 바꿔야"=중복편성으로 인한 '전파낭비' 논란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 NHK의 주도로 공영.민영방송이 일사불란한 협조체제를 갖춘 일본, 양대 공영방송 ARD와 ZDF를 중심으로 종목과 중계시간까지 합의되는 독일 등과 대조적이다.

여기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높은 시청률이 보장되는 시장을 어느 방송사도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분업의 경우도 경기 분배를 놓고 의견을 좁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KBS 이원군 편성본부장은 "이번에도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며 "돈 문제를 떠나 시청자 복지와 국가경쟁력을 위해 방송사 간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영덕 연구원은 "다음 올림픽 때는 중계방식이 선진국형으로 바뀔 수 있도록 지금부터 방송협회를 중심으로 논의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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