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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듀오' 투혼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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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경기가 끝난 후 착잡한 표정의 히딩크 감독(左)이 박지성과 함께 그라운드를 걸어나오고 있다.[에인트호벤 AP=연합]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태극 듀오' 박지성과 이영표는 최고의 활약으로 유럽 축구팬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5일(한국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PSV 에인트호벤은 AC 밀란(이탈리아)을 3-1로 격파했지만 1차전 패배(0-2)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승행 티켓을 AC 밀란에 내줬다. 1, 2차전 합계 3-3으로 동률을 이뤘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서 밀린 것이다.

한국 선수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의 꿈은 사라졌지만 박지성은 '한국인 최초의 챔피언스리그 본선 득점 선수'라는 영예를 움켜쥐었다.

전반 9분 미드필드에서부터 폭주기관차처럼 공을 몰고 나간 박지성이 페널티지역 왼쪽의 헤셀링크에게 연결했다. 멈추지 않고 골 지역 왼쪽으로 파고든 박지성은 헤셀링크의 패스를 받아 강력한 논스톱 왼발슛을 날렸다. 공은 AC 밀란 골키퍼 디다의 손 위로 총알같이 날아가 네트를 흔들었다. 본선에서 7경기 무실점 방어를 펼쳤던 AC 밀란의 '빗장수비'가 한국 선수의 발끝에 처음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에인트호벤의 열세로 관측되던 준결승 2차전을 예측불허로 몰고간 주인공은 박지성이었다. 에인트호벤은 박지성의 골에 자신감을 얻어 AC 밀란을 압박해 들어갔다.

후반 20분 또 한 명의 태극전사 이영표가 유럽 최고의 오른쪽 윙백 카푸를 따돌리고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쇄도하던 코쿠가 힘차게 헤딩슛, 공은 다시 한 번 골망을 흔들었고 필립스 스타디움은 열광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2-0으로 끝난다면 연장전을 벌여야 했고, 결승 진출이라는 기적이 이뤄지기 위해선 한 골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후반 45분이 끝나고 인저리타임이 시작되면서 에인트호벤 수비수들이 일순 긴장의 끈을 놓친 순간 AC 밀란의 암브로시니가 카카의 크로스를 헤딩슛, 골로 연결했다. 급해진 에인트호벤은 1분 뒤 코쿠가 왼발 발리슛으로 다시 한 골을 추가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에 이어 또다시 결승 문턱에서 좌절한 거스 히딩크 에인트호벤 감독은 "마지막 순간 승리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갔다"고 애석해 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명문 구단을 상대로 경기를 지배한 선수들에 대해 "정말 멋지고 환상적인, 현대적인 축구를 구사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유럽축구전문 웹사이트들은 이날 두 골을 터뜨린 코쿠와 함께 박지성과 이영표에게 팀 내 최고 평점을 부여했다. 2002~2003시즌 챔피언 AC 밀란은 26일 리버풀(잉글랜드)과 터키 이스탄불에서 우승컵을 놓고 격돌한다.

허진석.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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