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혼자서도 잘 키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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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뿐이지만 모자람이 없답니다.

딸 아이의 아빠와 함께 살지 않는 건 그녀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래도 지금 천국에서 지낸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엄마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때나 목욕을 같이 할 때면 늘 "천국이 따로 없어"라고 하기 때문이란다.

서울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최은희(48.서울 마포구)씨. 그는 우리 나이 마흔둘에 낳은 딸과 둘이서 산다.

남자와 사귀다 임신을 한 뒤, 상대에게는 "같이 살 필요없다. 내가 혼자 잘 키우겠다"며 "대신 2년 정도 사업 운영을 못할 테니 생활은 도와달라"고 했다.

"부부가 돼서 함께 사는 건 좀…. 어려서부터 밥하고 빨래하며 남편만 따르는 주부의 모습이 싫었어요. 1950년대에 태어나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꿈꿀 정도였죠."

사실 스물넷에 결혼할 뻔했다. 하지만 결혼한 뒤 함께 외국에 나가야 하는 게 문제였다.

"그때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쓰러지셨어요. 그런데 맏딸인 제가 외국에 나가서야…."

10년 넘게 어머니 병구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서른아홉이 됐다.

"그해 내내 이런 생각에 시달렸어요. '마흔이면 아이는 못낳겠지' 하는…."

결혼은 어쨌든 아이는 꼭 갖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입양기관도 기웃거렸다. 하지만 입양은 부부만 할 수 있다는 말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허전함을 달래려 고아원 후원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다 마흔하나에 아이의 아빠를 만났다. 임신 사실을 안 순간 저도 모르게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왔단다. 그게 96년 10월이었다. 두달 뒤 남동생 둘, 여동생 하나의 가족들과 스키장에 갔다. 거기서 임신 사실을 알렸다.

"굉장히 오래 침묵이 흘렀어요. 그러더니 '누나가 어련히 선택했을까'라더군요."

아이를 낳는 순간 의사가 "예쁜 공주님이네요"라고 했다. 그 순간 걱정이 하나 떠올랐다. 자신을 닮아 머리숱이 적지 않을는지. 그래서 물었다. "애기 머리카락 있어요?" 의사의 반응은 폭소와 더불어 "애 받다가 그런 소리 들어보기는 처음"이라더란다.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낳아 마취까지 한 상태였건만, 그는 당시를 그렇게 생생히 기억했다.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을까마는, 그 후 최씨의 삶은 철저히 딸에게 맞춰졌다. 여동생에게는 "몸매 망가지니 모유 먹이지 말라"고 했던 그다. 그러면서도 "초유가 아기에게 좋다"는 말에 정작 자신은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

딸이 다섯살 때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같이 배웠다. 평발이어서 탈 때마다 물집이 생기는데도 요즘은 주말마다 딸과 함께 인라인 타는 재미에 빠져 있다. 심지어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딸의 말에 좋은 언니감이 있는 이혼남을 찾았다. 그러고는 결혼도 심각하게 생각했었다고 털어놨다.

아이의 아빠는 외국에서 사업을 한다. 1년에 한번쯤 한국에 들어와 아이 얼굴을 보고 간다. 이따금씩 "아빠가 매일 왔으면 좋겠다"는 아이를 달래는 게 힘겹다고 했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있는 기쁨에 비하면…. 지난해 어버이날 처음 카네이션을 받고 펑펑 울었어요. 행복해서. 다른 엄마도 그럴까요."

글=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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