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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나의송사] 8. 한일대 김영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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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갖은 종언주의가 오히려 활개를 치고, 위기론이 잘 팔려나가는 역설에서 보듯, 20세기의 사상계는 어떤 거대한 한살이가 끝나가는 자의식으로 범람했던 시대였다.

과잉한 성취를 이룬 20세기의 인류는 어느 세기보다 더 당대적(當代的)이어서, 자신의 시대를 공정하고 차분하게 따져볼 수 있는 거리감을 얻기 어렵다.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구호 아래 지레 전망을 닫고 '역사의 종말' 을 외쳤던 것도, 우리가 얼마나 금세기에 깊이 빠져있었던가를 극적으로 증명한다.

유언에 감상과 허영이 흔하지만, 유토피아의 꿈이 사라진 뒤에도 허둥대지 않고 당대를 평가하는 것은 과연 어려우리라. 그러나 어쨌든 이 어려움 자체가 금세기의 성격을 추정할 수 있게 하는 창구가 될 법도 하다.

"세계화란 어쩌면 오히려 지구의 타원이 더 길어지면서 만날 수 없는 쪽은 더욱 만날 수 없게 된 현상" (정주하)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세계와 한반도의 추세를 한데 얼버무릴 수 없는 사정이 역력하다.

이것은 학문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송사로는, 오히려 우리의 사정을 가깝고 세게 보고(觀), 세계의 지형을 멀고 약하게 보는(見) 쪽이 어울리겠으나, 여기서는 20세기를 보내는 인류의 사상사적 위상과 풍향에 초점을 맞춰보겠다.

우선은 비(非)에 관한 이야기다. 비란 시(是)를 뒤집거나 그 틈을 노리고 드는 부정의 기운인데, 20세기는 요컨대 '부정의 시대' 다.

금세기는 현란한 여러 학문들의 경쟁으로 자못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분야나 주제의 차이를 넘어 일관되게 드러나는 모습은 단연 이 '부정' 의 정신이다. 그중 두드러진 것은 역시 근대.탈근대 논의인데, 일부에서는 이 시비의 경직된 이분법을 벗고 근대와 탈근대의 구도를 가로지르는 기획에 열중한다.

근대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탈근대 논의는 서구에서 자생적 자아반성의 차원으로 치밀하게 전개되었으며 미래 사회의 전망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실험적 준거로 활용되었다.

우리의 경우, 이 담론은 현실을 앞질러 날아다녔고, 90년대 들어 이념의 공백을 메우며 달라진 지식세계를 급속히 주도한 바 있다.

"긍정과 부정 사이의 모순은 새로운 인식의 계기" 라는 말처럼, 이 시비의 구도는 새로운 지평의 계기가 될 듯도 하다. 실로 21세기의 풍경은 이념으로서의 근대와 기법으로서의 탈근대를 가로지르는 지평이 어떻게 구체화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개될 것이다.

두번째는 반(反)에 대한 이야기다.

반이란 앞의 비(非)가 그 속살을 키워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논리적으로도, 부정이 있어야 반항의 기운이 응집되는 법. 러시아 혁명으로 전개된 현실 사회주의권의 역사는 이 기운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준 바 있다.

혹자에 따라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관계는 정반(正反)의 구도가 아니라 공산주의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탈해서 저발전의 단계에 머물던 구조라고 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실질적인 양분의 냉전체제는 20세기 지구적 삶의 구도를 주도했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집체주의

하여튼 금세기의 양대 집체주의인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모두 수천만명의 희생자라는 어두운 과거를 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 인류는 개인의 자율성이 뒷받침되지 못한 집체주의에 어느 정도의 항체를 지니게 되었다.

정반의 구도를 벌이면서 학문과 사상의 20세기적 다양성을 표출한 사례는 셀 수 없다. 19세기 후반에 정점에 달했던 과학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인문주의와 심미주의, 플라톤주의와 데카르트주의를 현대 유럽의 정신사적 토양 위에 부활시키려 했던 현상학, 그리고 해석학적 반성,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그리고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의 보완적 대립구도 등이 눈에 띈다.

의식과 언어, 정신과 몸, 물리학과 생물학, 문화와 자연, 국가와 시민사회, 노동과 정보, 남성과 여성, 코스모스와 카오스, 요소론과 전체론, 대서사와 소서사 사이의 긴장도 우리 시대 학문사의 화두가 된 범주들이었다.

동.서양은 상호보완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흑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은 원래 백인보다 열등하다" (흄)든지, "한문은 철학의 언어가 될 수 없다" (헤겔)든가, "동양이 서구의 봉건사회에도 미치지 못한 이유는 기후와 풍토 때문이 아닐까 한다" (엥겔스)는 등의 코미디 열전이 끝나고, 정반(正反)의 동서양이 상보의 지평을 향하여 차분히 다가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20세기 정신문화를 풍성하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세번째는 다(多)에 관한 이야기다.

일견 비와 반을 거치면서 다(多)의 문화가 번성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전문가들의 일치(homologie)보다 창안가들의 불일치(paralogie)에 근거를 둔다" (리오타르)는 새로운 지식관도 이런 배경에서 자생한다.

금세기는 실로 다원(多元)과 다(多)가치의 시대였다. 서구의 중세는 신이 정점을 이룬 수직적 구조의 단원적 세계였고, 근세도 다양하게 변용된 수학주의의 잣대가 기승을 부린 시대였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가장 딱딱한 자기완결적 논리구조 속에 칩거했던 물리과학조차도 "스스로 자기 한계를 두는 인문적 겸손" (하이젠베르그)을 말할 만큼 변화의 물결은 거셌다.

다원주의는 일종의 전염성 논리를 통해 자기확장을 꾀한다. 가령 문학과 철학 사이의 내밀한 접촉을 공론화시키는 작업(사르트르.머독.데리다.로티)이나, 사료의 한계를 인접학문을 창의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극복하고 학제간 연구의 전범을 보이는 1960년대 이후의 '새로운 역사학' 도 내적 필연성에 따라 전염의 학문성을 개척해간 경우다.

마지막은 타(他)에 대한 이야기. 다(多)의 토대 위에서 타에 대한 관심은 절로 우러나는 법. 이 타자에의 감수성은 근대적 자의식에 고립된 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 구성과 윤리의 토대를 예시한다.

비반다(非反多)의 경험을 타(他)로 모아 승화시키는 금세기 학문의 귀결점은 역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역정(歷程)이 묵혀내는 아름답고 개성적인 이치들의 어울림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일리(一理)들의 잔치로 부르며, 이 송사가 그 잔치에의 초대장이 되기를 바란다. 실로 진리는 사귀기 힘든 친구며, 무리(無理)는 사귐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김영민 한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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