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된 여론' 치유될까…김대통령, 핵심참모 민심관리에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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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필리핀을 방문 중인 김대중 대통령은 옷 로비 의혹 사건을 일단 덮어두고 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엄정한 대처 의지를 전하고 왔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김정길 법무부장관에게 "추호도 주저없이 사실대로 밝히고 법대로 처리하라" 고 지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대통령의 통치 보고서가 외부로 흘러나간 데 대한 金대통령의 격노는 엄청나다" 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金대통령은 권력 내부의 기강문란과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도 주변에서 찬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이번 기회에 단호히 뜯어고치겠다고 작심한 것으로 안다" 고 설명했다.

문건 유출의 책임자인 김태정 전 검찰총장.박주선 전 법무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체없이 이뤄진 것도 金대통령의 이런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 등 여권 핵심 참모들에 대한 金대통령의 불만은 민심관리의 엉성함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옷 로비 의혹 사건의 대처과정에서 여권의 대응이 여론보다 늘 한 박자 늦고 미온적이었던 게 사태를 확대시켰다는 대목을 金대통령은 직시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사건의 본질이 '실패한 로비' 인 만큼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면 타개책이 있는 만큼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의혹 해소의 지름길" 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검찰의 수사 착수가 구속으로까지 연결될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권력운영 차원에서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검찰과 공직기강을 책임져온 기둥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의 기를 살려줘 총선 전략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여권에선 고려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청와대의 분위기는 아직 신중하다. 한 핵심 관계자는 "구속만이 사법처리의 전부는 아니다" 며 "구속 여부는 수사결과를 본 뒤 결정할 사항" 이라고 말했다.

결국 두 사람에 대한 사법처리의 수위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감안되겠지만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은 여론의 향배가 될 것이다.

국민회의의 한 당직자는 "金대통령은 악화된 여론을 적당히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완치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통치권적 차원에서 깊이 고민 중" 이라고 말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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