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사회적 인프라로서 사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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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광고 우편물의 홍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필자는 근래 전에 없던 별난 우편물들을 자주 받는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 주로 영미권의 법과대학들에서 보내오는 대학 홍보물이다.

대학을 선전하는 커다란 포스터와 수십장의 입학지원서, 그리고 학생들에게 잘 알려 지원케 해달라는 부탁편지가 곁들여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 학생들이 영미권 법과대학들의 중요한 '고객' 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한 다음 사법시험에 집착하지 않고 바로 미국에 가 그곳 법과대학에서 1~2년 공부한 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예가 점차 늘고 있다.

어떤 이의 추산에 따르면 교포자녀들 중 변호사가 되는 수까지 합하면 한해에 미국에서 변호사자격을 따는 한국 또는 한국계 젊은이들 수가 우리나라에서 매년 사법시험을 통해 배출되는 법조인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법률서비스시장이 개방되고 미국의 거대한 로펌들과 함께 이들이 한국 법률서비스시장에 몰려들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어떤 교육을 통해 얼마만큼의 법률가를 배출하는가는 단지 사법(司法)이나 법학교육 종사자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요즘 일본에서도 사법개혁 논의가 무성한데 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투명한 룰과 자기 책임을 관철' 하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사법' 을 정비하고 확충하는 일은 21세기에 대비한 국가적 과제다.

여기에는 제도적 측면과 함께 인적(人的)측면이 있는데 '사법의 인적 인프라' 의 핵심적 변혁과제가 법학교육 내지 법조인 양성방식의 개혁이다.

대통령 자문기관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는 이미 지난 8월 법학전문대학원 설립을 골자로 하는 법조인 양성 개혁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개혁안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또다른 자문기관인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와 협의할 것을 지시했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그간의 심의결과를 공청회에 부치고 올해 안으로 최종보고서를 낼 것이라 한다.

최근 알려진 이 위원회의 개혁안 가운데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법조인 양성제도에 관한 개혁방안이다. 이 개혁안은 사법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실무수습 교육을 해온 지금의 사법연수원을 '사법대학원' 으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법원 산하에 사법대학원을 두되 대학처럼 전임교수진을 구성하고 실무수습만이 아니라 학문으로서의 법학이론도 교육하며 수료자에게는 석사학위를 준다는 구상이다.

이 방안은 지난 김영삼(金泳三) 정부 아래에서의 이른바 로스쿨 설립 추진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검토됐던 타협안과 비슷한 내용이다. 이 구상은 이를테면 국립의 로스쿨을 한개 설치하자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시험에 의한 선발이 아니라 대학원 수준의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종래 개혁론자들의 주장을 기본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이 점에서는 진일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방안에는 몇 가지 문제가 따른다. 우선 기본적으로 법조인 교육기관을 국가독점체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다. 이 점과 관련한 여러 부수적 문제점이 제기된다. 기존 대학을 제쳐두고 새로 큰돈을 들여 국립대학원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점차 늘릴 것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제2의 사법대학원을 설치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대학 가운데 제2, 제3의 사법대학원을 인가할 것인가. 대법원이 관할한다면 과연 수준급의 교수진 구성이 뜻대로 될 것인가.

바람직한 대안 모색과 관련해 최근 일본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과대학원 설립논의도 주목할 만하다. 거의 같은 제도를 갖고 있는 이웃 일본에서 거의 동일한 시기에 매우 유사한 개혁안이 거론되고 있는 점이 우선 흥미로운데, 그들 논의에서 중심적으로 검토되는 개혁안의 핵심은 이렇다.

대학의 기존 법학부를 그대로 두되, 그 위에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고 그 수료자의 7, 8할에 대해 변호사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의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제시한 개혁안과의 기본 차이는 한 대학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을 모두 둘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안이 가장 앞서 나간 것이라면,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안은 최소한의 변화만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일본에서의 대표적 개혁안은 그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해관계집단들의 이익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두 번째 시도되는 사법개혁 성패의 관건이다.

양건<한양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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