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내 것, 네 것, 우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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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에서 연수하던 한 한국 검사가 들려준 부끄러운 기억 한 가지. 어느 날 안면이 있는 일본 검사를 찾아 검찰청에 들렀던 그는 일본 검찰청의 현황을 이것저것 묻다가 한국엔 없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 도움이 될성 싶어 만든 배경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자료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방금 전까지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던 일본 검사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섭섭함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단다.

잠시 후 한 보따리의 자료를 챙겨준 그 일본 검사는 "한국에서 검사들이 연수를 나올 때마다 이 자료를 청해가는데 아마 매번 잃어버리는 모양" 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3년 전 미국 연수를 다녀온 동료기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미국으로 출장온 공무원들이 국내에 적용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행정제도를 발견해 자료를 요청하면 늘 미국 공무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하더란다. 나중에 알아보면 틀림없이 앞서 자료를 얻어간 한국 공무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관련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당연히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자료로 공개해 전체 사회의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 외국인들로서야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끼리도 자료를 함께 활용하지 않는 한국인이 '외계인' 처럼 보일 수밖에.

게다가 우리와 달리 이들은 몇년씩 한 자리를 지키는 터줏대감도 많아 얼굴만 바뀌면서 똑같은 자료를 몇번씩 달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날 법도 하다.

비단 외국에서 가져온 자료뿐일까. 후임자에게 업무를 넘겨주는 데도 우리네 인심은 무척 야박하다. 승진해가는 이건, 밀려나는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그 직무를 수행하며 얻은 노하우를 제대로 일러주는 전임자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다.

국가기관이건, 사기업이건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늘 어떤 자리이건 처음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가뜩이나 자리바꿈이 빈번한 게 우리의 조직문화이니 그렇게 낭비되는 비용과 에너지가 얼마나 클 것인지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잘못된 '내 것' 의식이 '내가 애써 알아낸 것' 정도에 그치지 않고 '네 것' 까지 넘보며 확대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해나가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 지도층이다.

대통령에게 보고된 문서가 유출되고, 심지어 피의자측에게까지 전달된 이번 옷 로비 내사보고문건사건을 보며 나는 '내 것' 에 대한 그릇된 우리네 습성이 이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여긴다.

국가기밀을 다루는 국정원장이, 범죄를 다루는 수사검사들이 퇴임하면서 한 보따리씩 자료를 챙겨 나오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범죄를 다룬다는 법 집행의 총수가 문건을 몰래 건네받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피의자측에게 복사까지 해 '친절히' 나눠주는 세상.

이들 앞에서 돈 몇푼에 눈이 어두워 불법 영업을 하는 업소 주인에게 일제 단속시기를 알려주는 말단 경찰의 빗나감은 차라리 애처롭기까지 하다.

'내가 작성했으니 내 것' 이고 '내 손에 있으니 내 것' 이라 여긴다고 해서야 명색만 사회지도층일 뿐 도둑의 윤리의식과 다를 바 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다른 이에 대한 협박의 수단으로도 쓸 수 있는 '머리' 와 '지위' 를 지녔다는 점에서 그들은 도둑보다도 더욱 나쁘다.

사회의 자산으로 함께 공유해야 할 자료를 '내 것' 으로 틀어쥐거나, 조직체계에서 관리해야 하는 정보를 '내 것' 이라며 빼돌리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정보관리에 미흡했던 부분은 시스템으로 보완하고 법과 제도로 규정돼 있는 것은 엄격한 법 집행을 하는 것만이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 인 사회의 무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

해당 직무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어 직책을 수행하는 이들이 계속 자신의 경험을 첨가하도록 한다든가, 직무활동 중에 개별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공개하는 사람에게는 업무평가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마련한다면 '내 것' 은 '우리 것' 이 돼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사유화할 수 없는 정보를 '내 것' 으로 만든 이들에게는 누구든 예외없이 법에서 정한 대로 엄격히 벌을 내려 어떤 상황에서도 '네 것' 은 결코 '내 것' 도 '우리 것' 도 될 수 없다는 인식을 사회 전체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홍은희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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