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논문 조작’ 3년5개월 만에 1심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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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말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이 3년5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황우석 박사가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종근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배기열)는 26일 논문이 조작된 것을 알면서도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받아낸 혐의와 연구비 횡령, 난자 매매 혐의 등으로 기소된 황우석(56) 박사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의 잘못이 작지는 않지만 실형으로 엄벌할 정도는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황 박사가 2004년과 2005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이 모두 조작됐다고 판단했다.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중 DNA·테라토마 사진, 2005년 논문 중 줄기세포 도표 등이 조작된 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황 박사가 논문 조작 가운데 일부를 암묵적으로 지시했거나 묵인했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양형(형량 결정) 이유를 밝힌 대목에서도 “과학적 연구라고 하더라도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성에 엄격한 잣대를 댔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황 박사 본인은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고 믿고 있어 조작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2005년 논문의 경우 “황 박사는 실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주인 것으로 믿고 있었으며 다만 논문 제출을 서두르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논문 조작과 관련해 “검찰이 사기가 아닌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다면 유죄가 선고됐을 것”이라며 검찰 기소의 문제점을 짚었다. 또 횡령 부분에 대해 단순 횡령 혐의가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면 형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농협과 SK로부터 연구비 20억원을 편취했다는 혐의(사기)에 대해 “농협과 SK는 논문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지원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연구비 5억9000여만원을 차명계좌 등에 보관하며 사적 용도로 쓴 횡령 혐의와 불임여성들에게 인공수정 시술비 등 3800만원을 감면해 주고 난자를 채취한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유죄가 인정된 횡령 등 혐의에 대해 “피해액 대부분이 연구와 어느 정도 관련 있는 용도로 사용됐고 오히려 자신의 농장과 각종 상금 등을 공익재단이나 과학기술 연구단체에 기부했다”며 황 박사 자신의 사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사용된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을 인정했다.

논문 조작을 주도한 김선종(38) 전 미즈메디연구소 연구원에게도 황 박사와 같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김씨가 미즈메디연구소의 수정란 줄기세포를 황 박사 연구팀의 내부세포괴와 혼합하는 이른바 ‘섞어 심기’를 통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가 확립된 것처럼 위장한 혐의(업무방해)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정부지원 연구비 등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천(44) 서울대 교수와 강성근(40) 전 서울대 교수에게는 각각 벌금 3000만원과 10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을 맡은 배기열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본지 기자와 만나 “논문을 조작한 것은 맞지만 그걸 이용해 연구비를 편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황 박사는 12개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가 수립됐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을 속일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황 박사에게 실제로 ‘원천기술’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과학자들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법원이 결정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며 “원천기술이란 개념은 매우 다양한데 배반포 단계까지를 원천기술로 볼 수도 있고 줄기세포 수립까지를 원천기술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김주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업무방해(논문조작) 혐의로 황 박사를 기소하지 않은 것은 모든 논문조작을 기소할 수 없고 사기 혐의에 포함됐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항소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우·최선욱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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