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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내부자 거래 스캔들’ 라자라트남의 정보 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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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당신, 어떤 기업에 대해 ‘에지’가 있지?”

내부자거래 스캔들로 지난주 내내 국제금융계의 최대 화제였던 뉴욕 헤지펀드 갤리언(Galleon)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라지 라자라트남(52·사진)이 2005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애널리스트에게 던진 질문이다. ‘에지(edge)’는 일반적으로 남과 다른, 자신만의 특별한 경쟁력을 뜻하지만 라자라트남이 언급한 ‘에지’는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 구직자는 폴리콤·힐튼호텔·구글의 내부 정보를 라자라트남에게 넘겼고, 갤리언이 운용하는 펀드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라자라트남을 전격 체포하면서 공개된 갤리언 스캔들에 월스트리트 저널(WSJ)·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언론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라자라트남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얻은 부당이득은 2500만 달러(약 294억원)로 지난해 불거진 버나드 메이도프의 500억 달러짜리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라자라트남과 공모한 혐의로 체포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인 IBM·인텔과 유명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고위 임원 등 5명의 면면을 보면 왜 1980년 이후 최대의 내부자거래 사건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수사당국은 2년 넘게 라자라트남의 전화를 도청한 끝에 이들을 체포했다. 스캔들에 연루된 인사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라자라트남은 무려 1억 달러의 거액을 보석금으로 내고 풀려났다. 스리랑카 태생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한 라자라트남은 어떻게 기업의 핵심인사와 교류하며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WSJ·FT의 설명이다.

◆정보 네트워크의 핵심을 공략=라자라트남은 언제나 정보를 모으고 전파하는 채널의 중심(hub)에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는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들고 살 정도로 정보 획득에 주력했다. 특유의 친화력도 도움이 됐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의 한 동료는 “라자라트남의 카리스마가 대단했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를 알았다”고 말했다. 말수가 적은 다른 아시아계 학생들과 달리, 많은 이들과 친교를 맺었다는 것이다.

1997년 갤리언 펀드를 출범시킨 뒤 기술주 투자에 성공해 실리콘밸리 주변에서 명성을 얻었다. 라자라트남은 남아시아계의 젊은 경영자들 모임에서 자주 강연하면서 인맥을 넓혔다. 동문인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그룹도 신경 써서 관리했다. 2004년 라자라트남은 자신이 투자한 고급 프랑스·중동 레스토랑에서 60명 안팎의 와튼스쿨 동문에게 만찬과 술을 대접했다.

◆직원들에게 ‘에지’ 강조=외부회의에서든, 술집에서든, 기업 방문을 위해 탄 비행기 안에서든,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찾아내는 게 직원들의 최대 의무였다. 라자라트남은 매일 오전 8시35분 회사의 운용인력·애널리스트·트레이더 등 최대 100명을 모아놓고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회의에 늦은 직원에게는 25달러의 벌금을 매겼다. 테이블 상석에 앉은 라자라트남은 직원들에게 무작위로 질문을 던졌다. 제대로 답변을 못하면 심한 꾸중을 각오해야 했다. ‘정보’ 생산을 못 하는 애널리스트는 쫓겨나야 했다.

갤리언의 트레이더도 자기가 주문을 받는 대형 투자회사의 주식 매매 동향을 파악하는 ‘에지’가 있어야 했다. 펀드매니저의 주문대로 단순하게 주식을 사고파는 다른 회사의 트레이더와 달리, 갤리언의 트레이더는 2500만~5000만 달러의 투자를 어느 정도 자체 판단으로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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