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새로운 김장 담그기…2시간이면 끝 '김장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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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22일 충북 진천군 광해원의 동원산업 김치공장.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한 50여명의 주부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작업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장 원정' 을 나선 이들에게 '시작' 신호가 내려진 셈이다.

작업대 위에는 개인별 칼.도마, 알맞게 절여진 배추, 소에 쓸 반제품 기본양념이 자리잡고 있다. 한쪽에는 생굴.황석어젓.생새우젓.통무.미나리.갓.쪽파.대파.부추.배.사과.대추.밤.소금은 물론 볏짚까지 놓여 있다. 각자 입맛에 맞게 다양한 재료를 곁들일 수 있도록 배려를 잊지 않은 것. 혹시 그 맛이 그 맛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 왔다는 안병순(49.서울 강남구 포이동)주부는 "워낙 재료가 다양해 예년에 집에서 하던 대로 김장김치를 담글 수 있을 것 같다" 며 좋아했다.

이 프로그램은 '양반김치' 제조업체인 동원산업(대표 강병원)이 만든 '김장 투어' . '번거로운 준비와 작업은 공장에서, 김장 맛은 각자의 입맛대로' 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밑거리 준비에 골치를 앓는 주부들을 자사 공장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안씨와 한 동네에 사는 김나랑(41)주부는 "큰 아이가 굴을 좋아하는데 소에 굴을 듬뿍 넣을 수 있게 됐다" 며 굴을 한 움큼 집어와 소를 버무린다.

작업대 앞에 선 주부들은 저마다 열심히 소에 재료를 첨가해 배추에 치대기 시작했다. 살림 경력이 미천한 신세대 주부는 나이 많은 선배 주부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한수 배운다. 손놀림이 빠른 주부는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주부를 거들어준다.

"무조건 소를 많이 넣는 게 좋은 게 아니야. " 갑자기 호통소리가 들린다. 김치 지도자로 초빙된 전통음식 전문가 김정덕 할머니가 김치를 잘못 담그는 주부를 나무라는 소리다. 김할머니는 손수 치대가면서 자상하게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회사 종업원들도 모자라는 재료는 보충해주고 맛도 봐주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동원산업 FS사업부 양천술 부장은 "공장을 소비자들에게 공개함으로써 본사 상품에 대한 신뢰도나 친근감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해 자체 이익은 배제한 채 이같은 행사를 준비했다" 고 말했다.

행사에 참가하는 비용은 10만원. 한 사람당 4인가족 표준김장량인 30㎏까지 담글 수 있다. 담근 김치는 회사측이 10㎏ 단위로 나눠 고객이 원하는 날, 원하는 장소로 세 차례 무료로 배달해준다. 김치가 개인 김장박스에 담긴 모양도 제각각. 소를 곱고 예쁘게 넣은 것, 무를 크게 썰어 버무려 넣은 것, 볏짚으로 포기마다 묶어 준 것 등 개개인이 그동안 담가온 방식을 알 수 있을 정도다.

곧 시집보낼 딸과 함께 왔다는 김광순(62.서울 강남구 도곡동)할머니는 "여러날 걸려야 김장 담그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데 하루만에 끝내게 됐다" 며 "이곳에 와서 나도 배운 점이 많다" 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이 담근 김장은 섭씨 4도의 냉장창고에 옮겨져 따로 보관됐다가 배달된다. 보관장소나 날씨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담근 김치를 그동안 신세졌던 친정이나 시댁에도 보낼 수 있다. 배추절임 등 밑거리가 다 돼있어 몸도 덜 피곤한데다, 김장 뒤의 쓰레기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용을 따져봐도 서울시가 추산한 올해 김장값(11만8천원)보다 유리한 편.

박찬영(59.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주부는 "집에서 이웃 주부들과 담그려면 점심식사 준비 등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나 이곳에 오는 바람에 고스란히 남았다" 고 말했다.

이 회사 양천술 부장은 "당초 12월 20일까지 한번에 50명씩 여섯 차례만 운영하려 했는데 참가신청자들이 쇄도해 계획을 확대 조정 중" 이라며 "일부 여행사에서는 일본인을 상대로 관광상품화하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고 말했다.

2시간 만에 김장을 끝내고 오후 4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다시 오르는 주부들에게는 동원측이 준비한 자사 선물세트와 우거지거리 무청 한다발이 쥐어졌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주부들은 "경치까지 즐기면서 올 김장을 홀가분하게 끝냈다" 며 흐뭇해했다.

진천〓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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