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MBC와 H.O.T가 만났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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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21일 오후 방영된 MBC의 'Login H.O.T' 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요즘 10대 사이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댄스그룹 H.O.T에게 50여분에 걸친 무대를 몽땅 내주었다.

국내 방송 처음으로 스타가 직접 나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쇼를 만들었다. H.O.T는 노래.연기.진행 등을 도맡으며 북도 치고 장구도 쳤다. 청소년의 고민과 생각을 기성세대와 나눈다는 기획취지도 번듯했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느낌만 남겼다. H.O.T에게 주말 황금시간대를 '헌납한' 이유가 살아나지 않았다.

마치 H.O.T에게 바치는 '송시(頌詩)' 같은 분위기였다. 죽어서 사랑을 이룬다는 지고 지순한 줄거리의 드라마, 많이 본 듯한 코미디를 흉내낸 콩트 등을 통해 H.O.T의 스타성을 띄우려는 의도가 물씬했다.

기성세대와 10대의 대화를 튼다는 '부자교감' 코너도 엉뚱한 퀴즈로 오히려 기성세대를 희화화하는 쪽으로 흘렀다.

게다가 다른 출연진은 어땠었나. 함께 무대에 오른 여성 댄스그룹 S.E.S가 H.O.T와 같은 기획사 소속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팬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MBC는 역시 같은 기획사에서 활동하는 신인 남성듀엣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화려한 데뷔무대도 차려주는 자상함을 보여주었다.

겉으로는 H.O.T의 '근사한 포장' 을 노렸지만 결과적으론 H.O.T의 '거창한 홍보' 로 비친 것이다.

'Login H.O.T' 는 MBC가 파일럿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정규 편성에 앞서 시청자 반응을 알아보려고 실험적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과정에서 H.O.T의 기획사와 프로그램 내용을 놓고 많은 협의를 거쳤다. MBC는 H.O.T의 스타성을, 기획사는 방송사의 파워를 활용하려는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다. 아무리 H.O.T라고 하지만 그들만을 위한 '용비어천가' 같은 화면은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H.O.T가 여러 이유로 현재 KBS와 SBS에 출연하지 않아 MBC의 세심한 판단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방송사간 스타확보 다툼이 프로그램 내용으로 곧바로 연결돼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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