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꼭짓점은 대일 청구권 자금과 월남전 특수에 힘입은 1967~69년이었다. 중동건설의 불꽃이 타올랐던 76~78년엔 팽창하는 국부(國富)가 대견스러웠다. 외채 망국론을 잠재운 86~88년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었다. 93~95년은 엔고(円高)에 반도체 수출이 겹쳐 행복했고, 2000~2002년엔 외환위기를 이겨내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완성한 자부심을 가졌다.
그 사이에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에서 1만달러로 120배 증가했다. 우리가 80달러일 때 북한은 120달러, 필리핀은 160달러, 아르헨티나는 1300달러였다. 그들은 주저앉거나 제자리에서 맴돌았지만, 우리는 풀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던 옛일을 잊을 정도로 성장했다. 지금 좀 어렵다고 하지만 한국 경제의 힘과 저력까지 의심받을 처지는 아니다.
따져 보면 호황 뒤끝의 하강 국면이 걱정스럽고, 회생할 수 없을 것 같은 침체의 바닥에서 절망을 느껴야 했던 기간이 더 길었다. 신군부가 등장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던 때의 마이너스 성장기를 포함해 그런 시기는 30년 가까이 된다.
이런 걱정과 절망의 현실을 견뎌낸 힘은 정신에 있었다. 성취의 보람을 맛봤던 과거의 기억과 좋은 날이 올 것이란 희망, 여기서 무너질 순 없다는 오기 같은 정신이었다. 이런 힘은 때론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어떨 때는 관료와 학자의 헌신성에서, 다른 시기엔 기업인의 모험정신에서, 종종 노동자.자영업자의 신바람과 부지런함에서 나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발산한 위기극복의 노하우는 경제 주체들이 지닌 이런 정신이었다. 얼마 전 열린우리당 경제 토론회에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가 "경제에선 사실보다 인식과 느낌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새삼 현실보다 현실을 대하는 정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