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요직 개편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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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정운영의 혼선과 난맥(亂脈)에 대한 우려과 함께 청와대와 여당.내각 진용을 앞당겨 개편 또는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여권 개편에 무슨 일정표라도 있는 건 아니지만 연말에 15대 국회가 사실상 문을 닫고 내년 초 여권신당이 출범하는 데다 4월엔 총선이 예정돼 있어 어차피 개편은 시기와 폭의 선택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이왕 개편하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두달 끌어보아야 득(得)보다는 어수선한 정국의 연장이라는 실(失)이 갈수록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여당의 요직 개편이란 지금 난마처럼 엉킨 의혹 정국을 풀어가는 분위기 쇄신 효과를 물론 거둘 것이다. 그러나 개편방식이 단순히 국면전환용이거나 또는 정세호도(糊塗) 욕심이 앞서선 안된다고 본다. 당장의 현안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 이후 또는 집권후반기까지 시야에 넣은 개편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개편은 단순히 사람을 바꿔치기 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여권의 전반적인 국정운영 시스템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최근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까지 나서서 청와대비서진의 미흡한 대통령 보좌 능력을 문제삼자 청와대측은 "잘 돌아가고 있다" 고 반박했다는데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 각 기관이 민주적이고 자율적으로 문제에 진실되게 접근하고 있다" 는 청와대측 주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종합적인 조정.판단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여권내 인사들로부터 거침없이 나오고있다. 어느 청와대 관계자가 "지금 검찰은 르네상스기를 맞고 있다" 고 말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이런 상황인식으로 제대로 된 정책판단이 나올지 의문이다.

여권 안팎에서 지적되는 국정운영 시스템 미비(未備)는 과거 정권의 '공안기관대책회의' 같은 것을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다. 여권 공조직들이 유기적으로 공조 기능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국가적 현안이 발생하면 정보.판단을 공유하되 쓸데없이 비선(□線)조직 같은 것이 나대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다. 최근 국정현안에 대처하는 여권의 모습은 마치 불난 건물을 두고 소방서.경찰서.구급대가 제각기 따로 놀며 서로 충돌하는 식이다. 이게 '민주적' 인 것은 결코 아니다.

총선에 출마할 몇몇 인사들이 청와대.내각에 포진해 있어 위기상황 업무에 전념하길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언론장악 의혹.옷로비 파문 등에 관해서는 단호한 문책인사 또한 불가피하다. 각종 의혹.현안들을 국민여론과 법의 판단에 따라 최대한 수렴하는 차원에서 요직개편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이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의 여권진용과 자세로는 순조로운 대야(對野)협상이 어려울 것이다. 선거법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은 더 큰 난제(難題)에 속한다. 결국 대통령이 결단할 일이지만 개편시기만은 빠를수록 좋다고 우리는 믿는다. 21세기 초반의 국정을 지고 나갈 새 팀과 그에 걸맞은 시스템이 조속히 등장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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