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열풍…직장 풍속도가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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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주식 열풍이 몰아치면서 직장 풍속도가 바뀌고 있다. 오랜 모색기를 거쳐 종합주가지수가 1, 000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전략을 세우기 위해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하는 '조출족(조기 출근족)' 은 이제 어느 사무실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점심시간 내내 증권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 놓고 자리를 지키는 '붙박이족' 도 눈에 띈다.

며칠 사이에 수백만원을 챙긴 뒤 크게 한턱 내는 '쏜다족' , 상사의 주식 시세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는 '눈치족' 도 생겨나고 있다.

대다수 기업들은 '업무 지장' 을 이유로 근무시간 중 주식거래를 하는 직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하고 나섰지만 직원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회사원 李모(30)씨는 "외환위기 이후 월급이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 회사측이 사원들의 자율적인 재테크마저 막을 권리는 없지 않으냐" 며 반발한다.

◇ 조기출근족과 붙박이족〓 '조출족' 은 증시 개장(오전 9시)이전에 남들이 내놓은 매매주문 현황을 살피고 그날 하루의 투자전략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부원 20명 중 12명 가량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L기업 모 부서. 출근시간인 오전 9시보다 1시간 이른 오전 8시에 사무실에 나오는 직원이 5~6명이나 된다.

점심시간에도 사무실에 앉아 있는 '붙박이족' 도 늘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주식시세표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다.

◇ 쏜다족과 넷맹 가련족〓주식거래에서 크게 챙긴 직원들이 자비로 회식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은 '쏜다족' 으로 불린다.

최근 주식 등락폭이 커짐에 따라 며칠 새 수백만~수천만원을 벌어들이는 '펀드 매니저' 급 직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내가 쏩니다(냅니다)" 라고 선언하면 사무실 분위기는 대번에 좋아진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다루지 못하면서 주식시장에 뛰어든 '넷맹 직원' 들은 '가련족' 으로 통한다. 잠시 인터넷으로 주식시세를 살피는 대다수 투자자와는 달리 이들은 전화로 시세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H회사 朴모(33)씨는 "목소리를 죽이고 상사 눈치를 살피며 객장에 전화를 거는 넷맹을 볼 때마다 '불쌍하다' 는 생각이 든다" 고 말한다.

◇ 자금 관리팀 인기 '상한가' 〓자금관리 부서 직원들이 급작스레 올라간 사내 인기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밥이라도 한번 먹자' , '커피를 마시자' 는 동료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보다 증시 동향에 밝은데다 '우리 사주' 가 도입된 회사의 경우 내부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 어느 시기가 매매 적기인지를 귀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상사 주식 관심쏟는 '눈치족' 〓자신의 주식은 물론이고 상사의 주식에까지 관심을 갖는 '눈치족' 도 늘고 있다.

무역회사인 E회사 金모(37)씨는 "주식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주가에 따라 그날 기분이 완전히 달라지는 만큼 부장이나 차장도 예외일 수 없다" 고 말했다.

金씨는 "주식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부장이 괜히 짜증을 내는 날이면 '주식이 떨어진 모양' 이라고 생각하면 대부분 맞다" 고 경험을 털어놓는다.

상사가 갖고 있는 주식이 하한가를 친 경우에는 결재를 미루거나 아예 주변에 얼씬거리지 않는 '눈치족' 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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