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C형간염 백신개발 지원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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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의 미생물학자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한 해는 1928년이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상업화의 길을 연 것은 1944년 탱크발효법을 개발한 미국의 제약회사 파이저다. 플레밍은 노벨상 수상이란 학문적 영예를 차지했지만 돈벌이란 실익은 파이저가 얻은 셈이다.

최근 서울대 의대 김정룡(金丁龍)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C형간염 바이러스의 혈청분리에 성공해 화제다. 전세계 의학계의 숙원을 한국인 과학자가 19년이란 각고의 노력 끝에 풀었다는 점에서 근래 보기 드문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金교수에겐 뼈아픈 경험이 있다. 71년 세계 최초로 B형간염 바이러스의 표면항원을 분리하고 77년 B형간염 예방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상용화는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83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당시 보건당국이 예방백신의 시판허가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충분한 검증절차가 있어야 한다지만 선진국보다 5년이나 앞서 개발한 백신이 뒤늦게 시판허가를 받은 것은 金교수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품질면에서 국산보다 나을 것이 없는 미국과 프랑스 제품이 세계시장을 선점한 것은 물론이다.

C형간염은 학문적 과제 외에 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질환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흔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3백90만명의 미국인이 감염자이며 이 때문에 치르는 비용만 91년 기준으로 6억달러(7천2백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매년 1만명의 미국인이 사망해 2020년엔 사망자 수에서 에이즈를 추월하리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세계 연구진이 C형간염 혈청분리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열매는 씨를 뿌린 자가 거둘 수 있어야 한다.

C형간염 예방백신의 개발은 국가경제에 일조할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닌다. 다행히 우리가 혈청분리 성공이란 고지를 선점한 만큼 이번만은 B형간염 예방백신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겠다.

홍혜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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