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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짝퉁’ 발기부전 치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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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사업차 중국을 다녀온 김모(48)씨. 칭다오 공항에서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입했다. 의사의 처방 없이 살 수 있다는 매력이 짝퉁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켰다.

하지만 그는 귀국한 다음 날 회사가 아닌 병원으로 출근했다. 붉어진 얼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데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등 부위가 심하게 욱신거려 옷을 입는

것조차 힘들었던 것. 의사는 “처방을 받지 않고 구입하는 발기부전 치료제는 대부분 가짜”라며 “이런 약에는 수은이나 납과 같은 중금속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주성분 허용치 넘거나 아예 들어있지 않거나

최근 대한남성과학회는 식품의약품안전청 마약류관리과의 협조를 받아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구입해 성분을 조사했다. 제품 종류는 가짜 비아그라 12종과 가짜 시알리스 7종. 제품은 인터넷과 수입상품점, 성인용품점 등에서 불법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들이었다. 학회 차원에서 진행한 조사로는 이번이 처음이면서 규모도 가장 컸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와 인제대 약물유전체 연구소가 참여해 공신력을 더했다.

모양과 크기에서 가짜 비아그라는 정품과 흡사했다. 색상에선 다소 차이를 보였다. 가짜 시알리스는 크기나 색깔 모두 차이가 나긴 했다. 하지만 정품과 대조해 보지 않는 이상 차이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성분 조사에서 가짜 비아그라는 샘플 12종 중 11종에서 허용치 이상의 과다한 실데나필(비아그라 주성분)이 들어 있었다. 가장 심한 경우엔 허용치의 2.4배가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과량 복용하면 안면홍조·두통·심계항진(가슴 뜀)·시각 이상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협심증 등 심혈관계 질환을 가진 환자가 과용량의 가짜 약을 복용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가짜 시알리스에는 주성분인 타달라필이라는 유효 성분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치료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밀가루 약’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가짜에서 발암성·신경독성을 유발하는 납이나 수은 같은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사실이다.

대한남성과학회 박종관(전북대병원 비뇨기과 교수) 회장은 “가격이 싸고,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지 않아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과다한 유효성분과 중금속 때문에 남성의 건강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혈압·심혈관질환자가 먹으면 치명적

우리나라에 발기부전치료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다. 1998년 비아그라 등장 이후 지금까지 토종 브랜드를 합쳐 다섯 가지 종류의 약이 판매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중국 등 인접국에서 밀수입되는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 규모는 정품 시장의 수 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3년간 세관에 적발된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만도 400억원대에 이른다. 중국 칭다오공항 등에선 약품 상자는 물론 정제 모양·색깔이 동일한 발기부전 치료제가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피해는 가짜 약을 사는 남성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선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먹은 45명의 남성이 저혈당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중 7명이 장기간 지속된 신경저혈당 증세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그중 4명은 사망했다.

부작용이 많은 이유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는 연령대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기 때문.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질환에 걸렸을 경우 자칫 과용량의 가짜 발기부전치료제를 먹으면 심근경색과 같은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가짜 발기부전치료제에 의한 부작용은 안면홍조, 두통, 백내장, 녹내장, 망막혈관 파열, 반신마비, 안면마비, 음경 부종, 원형탈모 등 다양하다.

이번 가짜약 성분조사를 주도한 대한남성과학회 민권식(인제의대 부산백병원 비뇨기과 교수) 홍보이사는 “신고된 부작용 사례를 보면 정품이 아닌 가짜 약인 경우가 많다”며 “심한 경우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 처방에 의한 정품을 구입해야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고종관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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