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역질서'시대] 2. 중국의 도전과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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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국과 미국간 세계무역기구(WTO)협상 타결이 알려진 15일 오후. 라디오에 귀기울이던 운전기사 양(楊)은 대뜸 "승용차부터 바꿔야겠다" 고 말한다.

80~1백%에 이르던 자동차 수입관세가 철폐될 테니 값싸고 질 좋은 외제차를 사겠다는 것이다. 관세를 25% 정도로 내리려면 아직 7년이나 남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은 벌써 '무관세' 에까지 가 있는 것이다.

중국경제신탁투자공사의 베이징(北京)증권영업부에 근무하는 추(邱)는 협상타결 1시간 전인 15일 오후 2시반, 방직업체인 상하이 산마오(三毛)의 주식 50만주를 사들였다.

협상이 타결되면 중국 방직품에 대한 선진국들의 쿼터가 없어져 방직업체의 주가가 치솟으리란 나름대로의 전망에서다. WTO 협상타결에 따라 움직이는 '왕서방' 들의 시장행위가 민첩하기 이를 데 없다.

중국 경제가 지난 78년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한 이래 최대 변화를 맞게 됐다고 언론들도 요란하다. 과연 중국경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전과 기회' 를 동시에 맞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먼저 도전을 보자. 기술집약적.자본집약적 산업에서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게 중국 국무원발전연구센터 리산퉁(李善同)부장의 전망이다.

시장개방.관세인하에 따른 수입증가로 이제 막 성장기에 들어선 자동차산업은 물론 컴퓨터.통신.의약.화공산업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의 무더기 도산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진행 중인 국유기업 개혁과 맞물려 실업자 속출 등 단기적으론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시장 개방에 따른 농업 과잉인구 또한 큰 문제다. 개방이 없어도 억 단위의 잉여 노동력이 농촌을 배회중인데, 농산물시장 개방으로 2005년까지 유휴인력은 1천만명이나 더 발생할 것이란 분석이다.

본격적인 개방 이후 언론.노동자.소비자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국제인권단체의 개입도 지금보다 한층 증가할 전망이다.

따라서 경쟁과 개방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존의 정치.사회부문이 경제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는 좌초하기보다 더 많은 기회를 잡게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무원발전연구센터의 장샤오지(張小濟)박사는 "WTO에 가입, 세계경제질서에 편입됨으로써 중국 경제가 글로벌 지구경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됐다" 고 설명한다.

또 중국의 투자환경이 안정.투명화돼 2005년까지 1천억달러의 외자가 추가로 유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시장의 확대와 관세율 인하, 각종 규제 철폐 등으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연 0.5~0.6%포인트 정도 추가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5년 중국의 무역규모는 98년(3천2백39억달러)의 배 가까운 6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장밋빛 예측도 나온다.

관세인하로 물가가 안정되면 라오바이싱(老百姓)들의 삶의 질이 대폭 개선되는 효과도 있다. 영어에 능통한 젊은 세대들은 중국에 진출하는 다국적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도 갖게 된다.

또 기업들은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하는 등 국제경쟁력을 갖추는 호기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WTO 가입으로 중.미 관계를 안정화시키는 전략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데 대한 기대감도 크다. 과거처럼 양국간의 정치문제가 경제문제로 파급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장치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외자에 철저히 장악된 채 영세한 전통산업 위주로 몰락하는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지, 아니면 기대대로 긍정적 효과를 거둘지는 더 두고볼 일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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