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네 명, 고국서 한 경기씩 치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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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호 16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09 시즌이 끝나간다.
올 시즌 LPGA투어는 25일 현재 27개 대회 가운데 23개 대회를 끝냈다.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어느 시즌보다 치열한 타이틀 경쟁도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다. 상금, 올해의 선수, 평균타수(베어 트로피)는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시즌 3승을 기록한 신지애(21·미래에셋)가 상금과 올해의 선수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5일 끝난 나비스타LPGA 클래식에서 3승째를 달성한 로레나 오초아(28·멕시코)가 강력한 경쟁자로 합류했다. 7월에 열린 에비앙마스터스에서 생애 첫 우승을 한 미야자토 아이(24·일본)와 크리스티 커(32·미국)도 강력한 경쟁자다. 남은 대회는 4개. 공교롭게도 경쟁자 4명의 고국에서 차례로 대회가 열린다. 대부분의 경기가 미국 국내에서 개최되는 PGA 투어와 달리 세계를 무대로 대회를 여는 LPGA의 글로벌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2009 LPGA 최후의 네 경기, 한·미·일·멕시코 승부

불안한 선두 신지애
시즌 초반, 전문가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오초아의 독주를 예상했다. 오초아는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2월 26~3월 1일) 대회와 멕시코에서 열린 코로나챔피언십(4월 23~26일)에서 우승하며 앞서 나갔다. 그런데 두 대회 우승을 끝으로 갑작스럽게 슬럼프에 빠졌다.

오초아가 주춤하는 사이 신지애가 치고 나갔다. 신지애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위민스 챔피언스(3월 5~8일)에서 우승한 데 이어 웨그먼스챔피언십(6월 25~28일), 아칸소챔피언십(9월 11~13일)에서 우승 트로피를 추가하며 상금 랭킹 선두로 뛰어올랐다. 올 시즌 1승에 그쳤지만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커와 미야자토가 신지애의 ‘대항마’로 나섰다. 하지만 오초아가 뒤늦게 잠에서 깨어나면서 시즌 타이틀의 향방은 안갯속으로 접어들었다.

신지애는 올 시즌 22개 대회에 출전해 3승을 챙기며 160만 달러를 벌었다. 신지애의 뒤를 미야자토(145만 달러), 커(142만 달러), 오초아(120만 달러)가 잇고 있다. 남은 4개 대회 우승 상금이 모두 20만 달러 이상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역전이 가능하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에서는 신지애(136점)의 뒤를 오초아(131점)가 바짝 뒤쫓고 있다. 커(118점), 미야자토(111점)도 남은 대회에서 1승을 추가하면 30점을 추가할 수 있어 뒤집기가 가능하다.

신인왕을 예약한 신지애가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받는다면 1978년 낸시 로페즈에 이어 31년 만에 골프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신지애는 한발 더 나아가 내심 4관왕을 노리고 있다. 최저 평균타수 선수에게 부여하는 베어 트로피를 획득하는 것이다. 신지애는 삼성월드챔피언십 이후 편도선염이 심해져 LPGA투어 2개 대회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국내에서 치료와 휴식을 병행하며 고갈된 체력을 보충했다.
 
안방에서 강한 자가 이긴다
LPGA투어의 무대는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올 시즌 초반에는 태국·싱가포르·멕시코·프랑스·잉글랜드·캐나다 등 6개국에서 열렸다. 남은 한국·일본 대회까지 포함하면 미국을 제외한 8개국에서 대회가 열리는 것이다. 명실공히 글로벌 투어다. 흥미로운 점은 남은 4개 대회가 공교롭게도 치열한 순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네 후보의 나라에서 열리는 것이다.

그중 첫 무대는 30일부터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 바다코스에서 열리는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이다. 이 대회에는 오초아, 커가 모두 출전한다. 미야자토는 일본 대회에 출전하느라 불참한다. 신지애 입장에서는 한시름 던 셈이다. 오초아나 커보다 미야자토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신지애는 “미야자토가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최근 미야자토의 샷이 가장 정교하고 날카롭다”고 말했다.

유리한 점이 또 있다. 신지애는 지난해 이 대회에 참가해 합계 이븐파를 기록하며 공동 17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오초아와 커는 지난해에 이 대회에 아예 불참했다. 따라서 대회가 열리는 바다코스가 낯설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이 끝나면 무대는 곧바로 일본에서 열리는 미즈노 클래식(11월 6~8일)으로 옮겨진다. 신지애는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다. 신지애는 지난해 15언더파로 2위 하토리 마유(일본)를 6타 차로 따돌렸다. 그런 만큼 신지애는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해 미야자토는 2오버파로 공동 51위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는 지난해와 다를 것이다. 미야자토가 산교레이디스오픈(10월 9~11일)에서 우승한 데 이어 후지쓰 레이디스 2009(10월 16~18일)에서는 연장전 끝에 아깝게 준우승에 머무는 등 최근 절정의 샷 감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토는 당연히 미즈노 오픈에서 승부를 걸 것이다.

세 번째 대회는 멕시코에서 열린다.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대회(11월 12~15일)다. 오초아는 멕시코가 낳은 최고의 골프 스타다. 그가 나오는 대회에 홈 팬들이 몰려들어 일방적인 응원을 보낼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은 고지대에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신지애가 유리하듯 멕시코에서는 오초아가 유리할 것이다.

LPGA투어 대미를 장식하는 투어챔피언십은 미국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열린다. 미국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커가 안방에서 힘을 낼 것이다. 결국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홈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순위 경쟁에서 우위를 보이는 선수가 시즌 타이틀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크다.

장타와 정교함의 대결
남은 대회의 승부는 기술적으로 장타와 정교함의 대결로 압축된다. <표 참고>
키가 1m60㎝도 안 되는 신지애와 미야자토는 평균 드라이브 거리가 각각 247야드(95위), 255야드(48위)로 중간 정도에 속한다. 하지만 신지애는 페어웨이 안착률 2위(81.7%), 미야자토는 15위(76.3%)로 정교한 티샷을 자랑한다. 여기에 평균 홀별 퍼팅 수가 1.75개로 공동 선두에 올라 있다.

오초아와 커는 파워 넘치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한다. 오초아는 평균 드라이브 거리 264.9야드(10위), 커는 263.9야드(12위)로 폭발적인 장타를 자랑한다. 장타자이다 보니 페어웨이 안착률은 신지애, 미야자토보다 떨어진다. 오초아는 평균 홀별 퍼팅 수도 1.75개로 장타와 쇼트게임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것이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커는 그린 적중률 73.8%(2위)로 날카로운 아이언 샷을 뽐내고 있다. 언제든지 몰아치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평균 홀별 퍼팅 수가 1.78개로 4명 가운데 가장 높다.

오초아, 커는 한 번 상승세를 타면 무섭다. 하지만 둘 다 다혈질이라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자멸하는 경우도 있다. 미야자토 역시 정교한 코스 공략을 구사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신지애는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좀처럼 감정의 기복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안정적이고 냉정한 플레이로 코스를 공략한다. 막판 중요한 고비에서 뒷심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한국 팬들은 여기에 기대를 걸 만하다.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는 LPGA투어 열차. 누가 마지막에 웃으며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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