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도시 간 경쟁에 정치개입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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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미국 하원의장을 지낸 팁 오닐은 “모든 정치는 지방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의 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모든 결정은 정치적’이라고 믿는 듯하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중앙의 문제 해결 방식,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들을 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가 경제보다 훨씬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진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표현할 때조차 힘든 장벽을 넘어 어떤 성취에 도달했다는 것보다는 야합이라든가 복잡한 이해관계의 사슬을 연상시킨다. 하물며 정치적 쓴맛을 경험한 경우는 더할 나위 없다.

지난 정부 때 지방은 국토균형발전 정책이라는 이름하에 명목상으로는 어느 때보다 그 지위가 고양되었던 것 같다. 지방 도시끼리 각축전을 벌이며 여기저기 혁신도시·기업도시가 세워졌다. 여기에 ‘5+2 광역경제권’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부여됐다. 도시 간에 쟁탈전을 하면서 맺힌 앙금과 상처 때문인지 이미 선정된 혁신·기업도시의 성과 여부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기류가 짙다.

몇 달 전에는 첨단복합의료산업단지가 치열한 경쟁 끝에 두 도시로 결정됐다. 부지를 확보하고 장기간 의료기기 산업발전에 매진했으나 탈락한 원주시와 강원도는 집단 허탈감에 빠져 있는 듯하다. 집적형으로 강행 추진해왔던 정부가 최종 결정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갑자기 분산형으로 선회한 배경 등을 두고 여기저기서 정치적 결정이라고 수군대고 있다. 사실 결정이 나기 전까지 도민들이 가장 경계한 것은 특정 지역을 배려한 정치적 개입이었다. 객관적·과학적 평가를 내세우는 정부로서는 이러한 의혹이 억울하겠지만 도시를 특화 전략산업에 따라 개발을 추진해왔던 지역으로서는 그동안의 산업적 성과마저 빼앗기지 않을까 위기감이 팽배하다.

지난 8월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린 ‘2009 세계도시축전 개막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20세기가 국가 간에 경쟁하는 ‘국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도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도시의 시대’”라며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갈등과 투쟁을 넘어 통합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집단이건 개인이건 어느 누구도 결정을 사전에 좌우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제도화’가 정착돼야 한다. 21세기를 주도할 도시 간의 경쟁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아름다운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과도한 정치개입이 제어돼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가 신뢰를 얻고 물증보다 심증이 판치는 사회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다. 이렇게 돼야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데이비드 이스턴의 개념에 걸맞은 정치의 권위를 우리 사회 속에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김명숙 상지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