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 전의원 밀입북사건] 한나라당 "간첩이랄땐 언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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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이 서경원 사건 때 평민당과 김대중 총재를 비난했던 현 여권 실세 인사들의 당시 발언을 15일 공개했다. 그들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면서 동시에 여권의 내부분열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였던 김종필(金鍾泌)총리는 "현직 국회의원이 간첩행위를 한 것은 중대한 문제로, 신분이나 경우에 관계없이 실정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치적 타협은 있을 수 없다" 는 방침도 덧붙여졌다.

민정당 사무총장이었던 이종찬(李鍾贊)국민회의 부총재는 당시 "평민당은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고 폭력혁명을 획책하는 일부 불순세력을 숙정하라" 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김대중 총재의 불고지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문제되자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협조하라" 고 공격했다.

그는 또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 나흘 전인 89년 7월 14일 "6.29정신으로 민주사회를 이룩하니 국회의원이 간첩이 돼 나타났다" 고 徐씨의 간첩행위를 기정사실화했다.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국민회의 이인제(李仁濟)당무위원은 "서경원 사건은 반국가범죄로, 사건실체를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중문책하라" 고 논평했다. 평민당에 대해서는 "자숙 해야할 평민당이 장외투쟁마저 감행하며 선거운동을 한다" 고 비난했다. 민정당 대표였던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이나 정무1장관이었던 자민련 박철언(朴哲彦)부총재는 김대중 총재에 대한 수사를 강력히 촉구했다.

"김대중 총재는 조사에 응하라" (朴浚圭의장.89년 7월 26일), "김대중 총재를 조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朴哲彦부총재.89년 7월 25일)고 압박했다.

민정당 부대변인이었던 이긍규(李肯珪)자민련 원내총무는 "평민당이 서경원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규정하고도 수사에는 협조하지 않는다" 고 거들었다.

한나라당이 발언록을 공개하자 이종찬 부총재는 "서경원 사건은 이미 처벌이 끝난 국가보안법 사건" 이라고 전제한 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당시 김대중 총재가 1만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한 것과는 별개 문제" 라고 주장했다.

이인제 당무위원은 "대변인으로서 당시의 실체적 진실에 충실했다" 며 "밀입북 자체를 비난했을 뿐 1만달러 문제는 모르는 일" 이라고 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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