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 문건' 수사 15일 돌연 개업휴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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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숨가쁘게 달려온 '언론장악 문건' 수사가 15일 돌연 개업휴점에 들어갔다.

지난 14일 문건 작성자인 문일현씨에 대해 출금금지 조치를 내린 뒤 별다른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검찰은 하루 두차례씩 해왔던 정례 브리핑마저 중단했다.

"뚜렷이 밝힐 것이 없다" 는 게 이유다.

그러나 文씨의 사신(私信) 행방 등 검찰이 풀어야 할 의혹은 아직도 산적한 상태다.

청와대 관계자 및 여권 핵심들과 이들에게 전화를 한 文씨간의 관계도 정확히 규명돼야 할 대목이다. 더불어 정확한 문건 유출 경위에 대한 수사도 미진한 느낌이다.

특히 중앙일보가 국민회의 이영일(李榮一)대변인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은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국민회의 쪽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스스로 혐의를 시인한 사건이어서 손만 대면 금방 마무리될 사안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같은 의혹 규명 및 미제(未濟)사건 해결에 사뭇 소극적이다. 사건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로 좁혀 놓고 있는 상태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사라졌던 文씨의 원래 하드 디스크도 입수해 복구를 시도했으며 鄭의원을 뺀 핵심 관계자 소환 조사도 끝냈다는 것이다.

사건의 곁가지격인 '제3의 인물' 의 실체와 文씨의 통화내역 조사도 할 만큼 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검찰은 "鄭의원 조사를 끝내지 않으면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 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심지어 사건이 완결될 때까지 수사발표를 늦출 심산이다. 검찰은 물론 관련자들의 진술에 의존, 사건의 큰 줄기는 사실상 확정지은 상태다.

文씨가 개인 소신을 정리, 문건을 만들어 보냈으나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가 받아보지 못했으며 이 상태에서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기자가 훔쳐 鄭의원에게 전달했다는게 그 구도다.

그러나 검찰은 鄭의원에 대한 조사 없이는 사건 종결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鄭의원은 한사코 출두를 거부하고 있으며 회기 중 의원을 소환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까닭이다.

세풍 사건의 주역으로 몰렸던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던 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체포영장이라는 '비장의 카드' 를 꺼내더라도 소환은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결국 이대로라면 문건 수사는 장기화될 게 확실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이 확대된 상황이어서 검찰이 신속히 움직이지 않을 경우 '늑장수사' 란 비난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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