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과 과학] '약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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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약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 는 말이 있다. 여간해 실수를 범할 것 같지 않은 사람도 부족한 점이 있다는 뜻이다.

밤눈 밝기로는 고양이를 당할 만한 동물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고양이를 두고 밤눈이 어둡다 했으니 필경 까닭이 있을 터. 고양이는 눈을 특별히 발달시켜온 동물이다. 특히 야행성이어서 밤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밝다.

밤에 사람이 볼 수 없는 물체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 대한수의사회 강종일위원(수의사)은 "사람과 견주어 빛의 양이 15% 남짓밖에 안돼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고 말한다. 초승달이나 그믐달 정도의 밝기에도 사람보다 훨씬 물체를 잘 파악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만일 돌연변이로 태어난 고양이라면 시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고양이는 밤에 다른 고양이처럼 먹이 사냥을 할 수 없어 낮 동안에 좀 더 부지런하고 약삭빠르게 굴어야 할 것이다.

고양이의 시각은 좀 특수한 진화 경로를 밟아 왔다. 예컨대 럭비공을 세워 둔 듯한 동공 모양이 한 예다. 이런 동공 구조는 좀 더 신속히 빛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고양이는 빛이 많이 들어오면 눈부셔서 사물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

또 밤중에 약간의 불빛이라도 받으면 고양이의 눈이 광채를 발한다. 이는 안구 내 반사세포라는 특수세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포는 거울처럼 빛을 반사시켜 외부의 광량을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고양이는 이처럼 이중삼중의 특수 눈을 갖고 있다. 이중 하나만 잘못돼 돌연변이가 있다면 밤에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고양이는 꽤 오래전부터 애완동물로 길러져 왔다. 이 때문에 같은 고양이일지라도 집고양이는 근시로, 야생고양이는 원시로 진화의 길을 달리해 왔다.

그러나 야생고양이.집고양이 모두 기본적으론 흑백으로 물체를 구분한다. 물론 약간 녹색으로 보이기는 해도 사람에 비하면 색상 구분을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와 맞먹을 정도로 좋은 지능, 거기다 뛰어난 밤눈. 그러나 이런 고양이 중에도 밤에 힘을 못 쓰는 녀석이 있다는 것을 눈썰미 좋은 옛사람들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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