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 붐비는 구도삼매의 길…태고종 선암사서 승려 199명 배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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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깊은 계곡 맑은 물에도 그림자는 진다.

고인 아랫물과 흐르는 윗물의 단층(斷層)에 파고든 맑은 햇살이 빚어내는 물그림자. 마음의 무거운 것들 훌훌 털어버리고자 천년고찰 순천 선암사 심산계곡 물앞에 앉아 시간 잊고 들여다보자니 또 마음 속 그림자라니.

지나온 이야기에 물들지않고 오로지 우주의 본 모습만 마음에 담는 해인삼매(海印三昧)지경에 이르려는 젊은 구도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불교 태고종은 지난 6일 총림인 선암사에서 1백99명의 새로운 승려를 배출했다.

태고종의 이번 수계산림(受戒山林)에는 전국 각 사찰에서 6개월이상 행자교육을 받던 2백23명이 참가신청을 내 소양시험과 면접을 통해 선발된 2백19명이 4주간의 교육을 받고 1백99명이 합격, 사미(니)계를 받아 승려가 된것.

매년 1백명 남짓만 승려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올해는 배가 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성직의 길을 택한 것에 태고종단은 고무돼 있다.

그 원인을 IMF로 갈곳 없는 젊은이들이 호구지책으로 몰린 것 아니냐는 풀이도 했지만 격변하는 시대와 반대로 변치 않는 도를 깨치려는 젊음이 늘었기 때문 아니냐는 긍정적인 쪽으로 종단은 해석하고 있다. 실제 이번 교육에 참여한 행자들의 교육 수준도 예년에 비해 월등히 고학력인 것으로 드러났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수행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위로는 스스로의 보리를 중득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행자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부터 사회를 계도하고 이끌어나갈 성직자라는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수행정진에 임해주기 바란다. "

홍인곡 태고종총무원장 스님이 계를 주면서 당부한 말이다. 행자들은 속세의 미련을 떨치고 성직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4주간 그야말로 용맹정진했다.

새벽4시 선암사 범종루에서 어둠을 거둬내며 종.목어.운판.법고 등이 울리고 난 다음 대웅전에서는 예불소리가 울린다.

새벽 3시반에 일어난 행자들이 마음 그림자를 씻기위해 '석가모니불' 을 수없이 되뇌며 백팔배 참회정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6시 아침 공양(식사)이 끝나면 도량 청소에 들어간다. 우수수 낙엽의 계절이지만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길이나 계곡에서 낙엽은 커녕 먼지 하나 없이 맑게 치우는 마음. 이어 불교학 개론.불경.불교사.참선과 좌립.불교 의례등의 강의와 실습을 받는다.

그리고 오후3시부터 5시까지는 대중운력에 들어가 농사와 차밭을 가꾼다. 그리고 저녁예불과 1천배 참회정진으로 다시 한번 마음을 씻고 밤 9시30분에 잠자리에 든다.

4주간의 이런 합동 교육과 함께 단체 헌혈, 사후 장기 기증및 화장 서약도 했다. 출가(出家)의 의지를 다지고 성직자로서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는 서원(誓願)으로서 육신 자체를 일체중생을 위해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교육을 마치고 계를 받은 스님들은 각자의 절로 돌아가 성직을 맡게 된다.

자신을 승려가 되도록 이끈 은사 스님 및에서 구도하며 일할 수도, 또 포교당으로서 새로운 사찰을 세울수도 있다.

이날 계를 받은 하일문스님(20)은 "세속의 습관이 많이 남아 있는 내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려웠다" 고 수계산림 기간을 말했다.

대학 2년에 재학중인 일문스님은 "불경을 많이 읽고 늘 책을 가까이 하는 학승이 되겠다" 고 밝혔다.

결혼 해 1남1녀를 둔 40세의 늦깍이 배지운스님은 "많이 고민하다 부인의 격려로 출가하게 됐다" 며 "승려는 많은 사람에게 시주를 받아서 그것을 다시 베푸는 사람이다. 부처님 법 안에서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 고 밝혔다.

결혼을 금하는 비구종단 조계종과는 달리 태고종단은 결혼 여부는 가리지 않는다. 새천년을 앞두고 승속(僧俗)의 구분 없는 종단에서 구도와 성직으로서의 직업 혹은 가정을 함께 꾸리려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는 것이다.

순천 선암사〓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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