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옥수수등 유전자 조작 농산물 '안전성 논쟁' 본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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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두부조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두 아들을 둔 조미경(35)주부. 지난달부터 첫 딸의 이유식으로 두유를 먹이기 시작한 새댁 최정희(29)씨. 두 사람은 요즘 고민스럽다.

두부와 콩으로 만든 식품을 가족들에게 먹여도 괜찮은지 몰라서다.

회사원 이홍규(42)씨도 퇴근 후 한잔 하러 들리곤 하던 두부전골집에서 반대편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최근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두부의 82%가 미국에서 수입된 유전자조작(GMO)콩으로 만들어졌다는 한국소비자보호원의 발표로 소비자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 유전자조작농산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약칭GMO)이란〓유전자 변형농산물.유전자 재조합농산물 등으로도 불린다.지난 95년 미국의 몬산토(Monsanto)사가 처음으로 콩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했다.

콩의 유전자를 조작해 병충해에 대한 면역성 등을 높여 수확량을 크게 늘린 것. 당시 지구촌을 배고픔에서 해방할 '제2의 녹색혁명' 으로 크게 환영받았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통되는 GMO는 50여 품목. 우리 나라에서는 수입의존도가 높은 콩.옥수수.감자 등 39개 품목이 각종 가공식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내 수요량의 91%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콩의 경우 두부는 물론 콩나물.간장.된장.두유.콩라면.이유식 등에 쓰인다. 옥수수는 옥배유, 감자는 감자 스낵을 만드는데 필수원료이다.

◇ 안전성 논란〓지난해 영국의 한 학자가 "유전자가 조작된 감자로 먹고 자란 쥐는 면역체제가 약하고 장기가 손상됐다" 는 연구 발표를 하면서 유럽과 미국간의 안전성 논란이 본격화됐다.

이 발표 후 유럽 13개국 과학자들은 "GMO가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의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 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식품의약국(FDA)측은 "유전자 변형기술은 지난 50년부터 시작된 육종교배와 크게 다를게 없다" 며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미국인도 먹는 음식에 GMO를 허가했겠느냐" 고 반문하고 있다.

이런 안전성 논란은 미국산 농산물의 수입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유럽지역 농민들의 반발이 겹치면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생명공학 전문가들은 'GMO가 안전하지 않다' 는 유럽측 주장에 대해 대체로 고개를 가로 젓는다.

고려대학교 생명공학원 이철호(55)교수는 "벼나 돼지.소 등 먹거리 동.식물 중 유전적으로 자연 상태인 것은 하나도 없다" 며 "GMO라고 해서 기존의 먹거리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고 말했다.

예컨대 벼의 경우 유전적 변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인간이 우수한 품종을 선택해 발전시켜왔다는 것.

李교수는 "우수 품종을 고르는 작업이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것 밖에 차이가 없다" 며 "유전자조작이란 용어보다는 '분자육종' 으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 덧붙였다.

생명공학연구소의 한 관계자도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일" 이라면서도 "GMO의 경우 설사 예상치 못한 알레르기 등이 일어난다 해도 농약을 쓰는 기존 기술보다는 훨씬 안전한 방법" 이라고 주장했다.

◇ 국내외 움직임〓미국은 물론 유럽연합에서도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식탁에 올려도 될지 안될지를 가늠하는 것은 미루고 있는 실정.

유럽연합은 소비자.환경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이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에 표시를 의무화했다.

일본도 대두.옥수수 등 10개 품목을 지정해 2001년4월부터 표시하기로 결정했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최근 소비자단체들이 식품에 대한 유전자조작 원료의 사용여부를 명시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소비자.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이미 여러 차례 GMO에 대한 안전성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정부에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YMCA 시민중계실 서영경팀장(36)은 "이번 논쟁으로 뒤늦게 식품의약품안전청이 GMO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며 "GMO안전성 논란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면 GMO 함유 여부를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표시제도라도 도입해줄 것" 을 요구했다.

유지상.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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