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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언론 “한국정부, 황장엽 방일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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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 정부가 북한에서 망명한 황장엽(86)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일본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2일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비공식 요청을 받고 최근 황씨의 방일 허용 방침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날 방한한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일본 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은 한국 정부와 구체적인 시기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황씨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초청해오면 방일 요청을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방일 중 이들의 안전보장은 일본이 책임진다는 조건도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초청 의도=일본은 황씨뿐 아니라 대한항공(KAL) 항공기 폭파범 김현희(47)씨의 일본 방문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이면 북한을 압박할 상당한 힘을 얻게 된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해결할 요긴한 카드로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납치자 문제는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중대행위로 간주되고 있어 피해자 가족뿐 아니라 전 국민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민주당 연립정권으로 집권세력이 바뀐 뒤에도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도 “납치 피해자 문제의 진전 없이 대북 협상은 없다”면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조직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정부 내에 설치된 ‘납치문제 대책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예산과 인력도 크게 늘릴 방침이다.

이는 민주당 연립정권이 자민당 등 보수 우파들의 정치적 공세를 감안한 조치이기도 하다. 납치자 문제에 빈틈을 보이면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와세다(早稻田)대 이용철 교수는 “민주당은 선거를 의식해 북한에 더욱 강경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배경으로 황씨와 김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도 예상된다. 나카이 납치담당상은 지난달 29일 “황씨가 일본에 오면 참고인 자격으로 심도 있는 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도 일본에 오게 되면 일본 정부가 북한에서 납치자와 접촉했던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격렬한 반발 예상=1997년 망명한 뒤 북한 체제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계속해온 황씨가 일본을 방문하면 북한은 강도 높게 반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고위층이었던 황씨가 일본에서 북한 체제를 생생하게 비난하는 것만으로 북한 지도부의 체면이 크게 구겨질 게 틀림없다. 북한은 황씨와 김씨의 방일을 허용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할 가능성이 크다. 황씨가 2003년 10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북한은 크게 반발했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는 이런 우려 때문에 일본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방일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황장엽·김현희씨가 일본 방문을 적극적으로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일본이 원하고 당사자들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도쿄·서울=김동호 특파원,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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