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PKO 법안 통해 파병 딜레마 해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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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어제 서울에서 열린 제41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직후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아프가니스탄 지원문제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구체적 제안은 없었다’는 게이츠 장관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아프간 지원문제는 이제 뜨거운 감자가 될 상황이 됐다. 지난 18일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의 ‘재정적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2001년 9·11 뉴욕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對)테러전쟁 차원의 ‘항구적 자유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동맹국 한국도 2001년 12월 건설공병지원단(다산부대)과 이듬해 5월 의료지원단(동의부대)을 아프간에 파병했다. 2003년에는 이라크 파병이 이뤄졌었다.

그러나 미국의 한국군 파병 요청이 있을 때마다 국내에서는 소모적 국론분열 양상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왜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한국이 참전해야 하는가”라며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번 아프간 지원문제를 둘러싸고도 이런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차제에 현명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답은 한국과 미국이 동맹관계에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 동맹은 두 국가 이상이 서로의 힘과 안보, 그리고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 안보협력을 하자는 공식·비공식 약속이다. 동맹 참여국은 물적·인적 안보자원을 공유하고 안전보장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회원국들은 동맹에 대한 의존성과 행동 자유의 제약을 받게 된다. 자신이 원치 않음에도 동맹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갈등이나 분쟁에 휩쓸릴 ‘연루의 위험’도 상존하는 것이다.

이런 안보 딜레마는 모든 동맹에서 나타나며 한·미 동맹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연루 딜레마’를 어떻게 잘 관리해 바람직한 동맹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한·미 동맹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과 사고의 전환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미 동맹을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 입장에서 인식해 왔다. 즉, 한·미 동맹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지역의 안정과 국제평화를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활동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제 한국도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동맹 회원국의 의무라는 점을 인정해야 더 건강하고 협력적인 동맹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

해외파병에 관한 원칙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정부와 국회는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파병과 관련된 법안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PKO 참여법안에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회 비준절차를 밟아나갈 수 있는 파병원칙이 담겨야 할 것으로 본다. 파병원칙의 제정은 소모적 국론분열을 예방하고 한국의 안보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면서도 한·미 동맹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짜여야 한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