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인사이더' 관람 막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주말 개봉된 한편의 영화를 놓고 미국의 대형 담배회사들이 초긴장하고 있다.

제목은 '내부자(The Insider)' 로 마이클 만 감독 작품. 디즈니 계열 영화사인 터치스톤이 제작했다.

담배회사에서 해고된 한 연구원이 회사 비리를 폭로한 뒤 회사의 살해 위협에 시달린다는 줄거리다.

담배회사로서는 유쾌할 리 없는 내용이지만 이 영화가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게 그들의 더 큰 걱정거리다.

영화 시나리오는 96년 미국의 여성 월간지 '배니티 페어' 에 실린 마리 브레너 기자의 기사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나이' 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미국 제3위의 담배회사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B&W)의 전직 연구담당 부사장 제프리 위건드(56)가 담배에 유독물질을 포함시키라는 회사 지시를 어겨 93년 해고됐다" 는 기사다.

뉴욕주립대 생화학 박사 출신의 위건드는 해고된 뒤 "담배회사들이 담배에 니코틴 외에도 유독성과 중독성이 있는 다른 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수십년간 고의로 은폐했다" 고 폭로했다.

96년엔 CBS방송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 '60분' 에 출연, 담배회사들의 비리를 고발했다.

담배회사들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B&W가 위건드에 대해 살해 위협을 가했다는 내용이 영화 속에 포함됐기 때문. 위건드가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자신의 집 우편함에서 똑바로 세워져 있는 권총 실탄 1발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더 이상 입을 벌리면 죽는다" 는 B&W의 경고를 암시하고 있다.

비상이 걸린 B&W는 즉각 "위건드를 위협한 적이 없으며 실탄 발견 사실도 미연방수사국(FBI) 수사결과 허위로 드러났다" 고 반박했다.

B&W는 미국의 1, 2위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RJ 레이널스 토바고 등과 함께 플로리다주의 흡연 피해자 50만명으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했다.

현재 18개월째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 3개사는 마이애미 법원측에 "평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며 배심원들이 이 영화를 보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청, 승낙을 얻어냈다.

마이애미 법원은 지난달 피해보상금을 일괄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며 앞으로 배심원들이 보상금 규모를 결정하는 과정이 남아있다.

예상되는 보상금 규모는 3천억~5천억달러(6백조원). 담배회사들로서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이 영화가 여론을 악화시켜 배심원 평결을 비롯, 계속 이어질 재판과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B&W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영화를 보면 진실이 위협받는다" 는 경고 문안과 함께 영화가 사실과 다른 점을 25개 항목에 걸쳐 자세하게 나열하는 등 "영화는 허구" 라는 점을 홍보하는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

소송을 담당한 판사에게도 "한번만 클릭하면 FBI 수사내용 등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어 판결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다.

B&W의 반발이 거세자 터치스톤측은 "영화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만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된 부분이 있다" 는 문구를 영화 속에 삽입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위건드는 영화를 본 뒤 "실제상황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고 논평했다.

B&W에서 연봉 30만달러에 스톡옵션과 각종 수당을 받았던 위건드는 현재 루이빌의 한 고교 화학교사로 근무하며 연봉 3만달러를 받고 있다.

그는 또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어린이들에게 흡연의 해악을 알리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대부' 로 유명한 알 파치노가 '60분' 의 프로듀서 역을 맡았고 위건드로는 러셀 크로가 분했다.

만 감독은 영화 '히트(Heat)' '라스트 모히칸' 과 TV 연속극 '마이애미의 두 형사(Miami Vice)' 등을 연출했다.

이훈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