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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다나카 나오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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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다나카 나오키(田中直毅.54)

- 도쿄대 법학부, 도쿄대 대학원 경제학과 박사과정 수료

- 21세기 정책연구소 이사장, 경제평론가 활동

- 저서: '빅뱅 이후 일본 경제' '최후의 10년-일본 경제의 구상' '새로운 산업사회의 구상' 등 다수.

지난 9월 17일 미국의 페리 정책조정관은 북한에 대한 신정책 개요를 발표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게이지먼트(포용정책)' 라고 해도 괜찮은 내용이었다.

즉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봉쇄하겠다는 게 아니라 북한의 선택에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하면서 그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줄 여지를 준다는 발상에 근거를 둔 포용정책인 것이다.

나는 이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이 포용정책의 실시와 평가, 그리고 넓은 의미로의 경제적 자원 배분의 문제는 한국.중국.러시아, 그리고 일본도 당사자로 참여하는 '슈퍼 스트럭처' 의 구축을 전제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같은 문제를 북한과 미국 두 나라 사이의 관계만을 기본틀로 삼아 다뤄나가려 해서는 불충분하다.

페리 보고서는 이 점과 관련,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동결에 대해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하며 이와 함께 한국.일본도 적절한 긍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상정한다" 고 적시하고 있다. 이것만 볼 때는 두 나라간의 관계축적을 전제로 동북아시아의 문제를 풀고 평화적 선택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페리 보고서의 본래 취지인 포용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나아가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동북아시아의 구도를 기대한다면 슈퍼 스트럭처의 구축은 빠뜨릴 수 없을 것이다.

페리 보고서의 포괄적 포용정책은 상황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하고 이에 따른 미국측의 대응조치로 설명돼 있다.

즉 ▶첫째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동결▶둘째 미사일 관련 기술수출 규제(MTCR) 준수와 관련돼 북한의 미사일 생산.배치.수출의 중단 실현▶셋째 한반도에서의 냉전 종결이라고 하는 3단계로 구분한 뒤 미국은 각각의 상황에 맞는 관계개선조치를 취해 나간다는 것이고 여기에 한국.일본의 전면적인 참여가 필요할 것이라는 게 그 요지다.

이같은 포괄적 접근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먼저 94년 10월 북.미합의에 의해 북한의 핵개발은 5년간 동결돼 왔으나 이 동결시한이 끝나버리면 수개월 사이에 핵개발이 재개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그리고 98년 8월 31일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판명됐듯 이제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이 기술적으로 미국 본토에까지 미치게 됐다는 현실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포괄적으로 사태를 구분해 그에 따라 상황을 개선하는 수단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제재의 해제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될 것인가-. ▶북한 물품과 원자재의 수입▶소비재 등의 물품수출.금융거래▶농업.광업.임업.석유.시멘트.운수업.인프라정비.관광산업에의 투자▶미국민으로부터 북한 주민에의 송금▶북한의 화물수송▶북.미간 민간항공기의 상호 탑승교류 등이 될 것이다.

경제제재가 부분적으로 해제된 것은 양국간 관계정상화에는 틀림없이 플러스다. 그러나 이로 인해 북한이 스스로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경제제재가 해제된다고 해서 북한이 '제2단계 상황' 을 성실히 이행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페리 보고서로부터 힌트를 얻어 미사일을 미끼로 여러 단계에 걸쳐 자신들의 이득을 얻어내는 작전을 취할 게 분명하다.

북한엔 미사일 수출이 외화획득의 주요 수단이기 때문에 이를 단념하기 위해선 그 '대가' 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전개할 게 불보듯 훤하다.

미사일 배치와 관련, (초점이)비핵화에 있다고 하면 미국도 (북한에)국제법 위반을 더 이상 몰아세울 상황도 아니다.

영변의 원자로에서 연료봉을 꺼내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게 됐고, 정 안되면 폭격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식의 태도를 취할 수도 있게 됐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틀이 존재하는 한 적어도 '핵' 에 대해서는 동원 가능한 방법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래식 무기의 배치나 생산의 억지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지난 5월 유고 주재 중국 대사관에 대한 오폭사건 이후는 중국도 미사일 생산증강과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국제사회의 현실로 볼 때도 북한에만 초점을 맞춰 미사일 배치나 생산을 중지시키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로 미뤄 볼 때 페리 보고서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만들어진 정책은 제1단계인 미사일 재발사 동결로 끝나버리고 말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결코 포괄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슈퍼 스트럭처가 구축되고 거기서 비정부쪽 '액터(주체)' 가 큰 역할을 한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접근법에서도 비정부쪽 주체의 운신폭이 훨씬 클 것이다.

경제제재를 해제한다고 해도 단지 정부가 '오케이'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상선이나 민간항공기가 북한을 오갈 수 있게 허용해도 정작 민간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따라서 '네트워크' 가 형성되기 위해선 민간기업들이 사전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투자에 따르는 충분한 '캐시 플로(cash flow.매출액-총비용)' 가 보장되지 않고는 그런 시도조차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신뢰를 쌓아가기 위한 기폭제가 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만약 일본의 정부개발원조가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기획.배분되는 체제가 정비된다고 가정해보자. 북한 주민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각국의 여러 지역으로부터의 비영리 시민단체(NPO)가 모여 슈퍼 스트럭처를 만들어 이 슈퍼 스트럭처에 북한을 위한 민생지원 조정기능을 부여하는 구상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슈퍼 스트럭처의 후보지는 오키나와(沖繩)가 바람직하다. 지나치게 군사전략상 요충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겠지만 한국의 NPO도 오키나와에 본부를 둔 슈퍼 스트럭처를 경유하고 나아가 여기에 조정기능을 하나하나 부여해나가면 된다. 힘을 모아 북한이 페리 보고서의 제2단계 상황까지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물론 병력 규모를 논하게 되는 이상 군축을 위한 조건조성도 이 슈퍼 스트럭처 내부에서 연구돼야 할 것이다.

전역미사일방위(TMD)연구가 설령 정부간에 이뤄진다 해도 NPO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슈퍼 스트럭처는 군축 실현 방법과 그 순서를 모색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일본은 국내적으로 먼저 비정부 부문의 활성화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정리〓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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